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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가 본 바이든 시대 "대중 강경파보다 협력파 셀 것…韓, 협력 촉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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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장진영 기자]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장진영 기자]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가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에는 대중 강경파도 있겠지만 협력하자는 목소리가 더 클 것"이라며 "한국 정부도 미국이 중국과 신냉전을 벌이지 않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코로나19 극복과 경제 회복, 기후변화, 핵 군축, 디지털 기술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중국과 냉전을 벌일 게 아니라 협력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다.

"미국민 대다수, 트럼프 분열 치유 원해, #바이든은 신사…우릴 포용으로 이끌 것" #"중국과 신냉전, 끔찍하고 세계에 위험, #코로나·경제회복·핵군축위해 협력해야" #"광범위한 워킹그룹·트랙2 외교 펼쳐야, #한국도 미국에 '신냉전 말라' 촉구하라"

삭스 교수는 12일 '2020 미국 대선 결과와 바이든 시대 전망'을 주제로 진행된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한 미·중 신냉전 구상은 정말 끔찍한 일"이라며 "21세기 십자군 전쟁(Crusades)을 추구하는 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대신 "바이든의 집권은 신냉전을 피하고 적어도 새로운 접근법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며 "바이든도 반중(反中) 전선을 이어갈 가능성은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처럼 아주 천박하고, 비이성적이며, 위험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과거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지한 대표적 미·중 협력론자였지만, 이번 대선 과정에선 중국의 패권 도전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포린 어페어스 3~4월호에 직접 기고한 '미국은 왜 다시 세계를 주도해야 하나'라는 글에서 "중국의 미래 기술·산업 지배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동맹·파트너 국가와 통합 전선(united front)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과 동료 민주주의 국가를 합치면 세계 총생산(GDP)의 절반을 넘기 때문에 규칙을 형성할 힘을 갖게 된다"라는 민주주의 동맹 결집이란 방법론도 제시했다.

삭스 교수는 이에 대해 "동맹을 결집하는 식의 반중 동맹(anti-China coalition)은 피해야 한다"며 "나는 미·중 두 나라가 당장 신냉전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경제·금융·무역·산업정책·기후변화·사이버안보 등 모든 핵심 문제를 논의하는 실무그룹을 만들고, 대학·싱크탱크들도 트랙 II(반관반민)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삭스 교수는 "미국민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증오에 찬 정책에 의한 분열을 치유하고 싶어 바이든을 선택했다"며 "바이든은 미국을 포용주의로 이끌고, 코로나19와 높은 실업률 등 미국 사회 위기에 실질적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밝혔다. 정치인 바이든을 "트럼프와는 달리 신사이고, 진지하고, 아주 노련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 코로나 팬데믹을 통제한 세계 최고의 국가 중 하나로, 경의를 표한다"며 "2021년 미국이 백신 보급과 향상된 공중보건 시책을 통해 코로나를 극복하면서 세계 경제가 회복하기 시작할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삭스 교수와의 일문일답.

2020 대선에서 미국 국민은 왜 바이든을 선택했나.
미국인 대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증오를 부추기는 정책들로 인한 분열상을 치유하고 싶어한다.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를 주도했다. 반면, 바이든은 포용주의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또 대다수의 미국인은 코로나19와 높은 실업률, 저렴한 의료서비스의 결핍, 기후변화 등 미국이 직면한 깊은 위기에 대한 실질적 해결책을 원한다. 나는 바이든이 보다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향해 갈 수 있는 실용적인 접근법을 제시할 것이라고 믿는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는 다른 방향을 갈까.
바이든은 다자주의를 지지한다. 그는 미국을 파리 기후협정, 세계보건기구(WHO), 이란 핵합의(JCPOA), 유네스코와 유엔 인권이사회 등 유엔기구에 복귀시킬 것이다. 나는 미국이 중국과 더 많은 협력을 목표로 추구하길 바라지만, 이 점에선 민주당 내 여론이 분열돼 있다. 어쨌든 미국은 보다 안정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할 것이며 이는 트럼프 시대의 편협한 민족주의를 넘어선 엄청난 진전이다.
제프리 삭스 교수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삭스 교수는 2001년부터 18년 간 코피 아난, 반기문 전 총장과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사진제공=삭스 교수 홈페이지]

제프리 삭스 교수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삭스 교수는 2001년부터 18년 간 코피 아난, 반기문 전 총장과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사진제공=삭스 교수 홈페이지]

유권자 1억여명이 사전투표했고 투표율은 최근 50년 동안 최고인데.
이번 대선의 높은 투표율은 미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엄청나게 동원됐다는 점과 동시에 그만큼 인종·소득·교육수준에 따라 깊이 분열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그래서 바이든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미국의 재통합이다. 트럼프 임기 4년 내내 미국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끊임없이 증오와 분열을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나 본 바이든은 어떤 정치인인가
먼저 바이든은 트럼프와 달리 신사이고, 진지한 사람이다. 그는 또 정치적으로 아주 노련한 사람이며 냉철하다. 그래서 나는 바이든이 당선돼 매우 용기를 얻었다.
바이든은 중국과의 신냉전을 피할 것으로 예상하나.
중국과 냉전을 벌인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 끔찍한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코로나19 극복과 경제 개발, 경기 회복, 기후 변화, 핵 군축,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평화적 이용과 같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협력적인 접근법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도 미국이 새로운 냉전을 부채질하지 않도록 촉구해야 한다.
바이든과 참모들도 무역·첨단기술·지식재산권 문제에 관해선 중국에 강경하다.
물론 바이든의 내각에 일부 대중 강경파(China hardliner)도 포함되겠지만, 나는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 바이든의 집권은 중국과 신냉전을 피하고 적어도 중국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설사 바이든이 반중(反中) 전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트럼프와 폼페이오처럼 아주 천박하고, 비이성적이며,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중국을 어떻게 대할지의 문제는 지금 미국에서 진행 중인 논쟁의 최대 쟁점이다. 미국은 적들에 대항해 '십자군 전쟁(crusades)'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그런 십자군 전쟁은 매우 순진하고, 위험하지만 과거 베트남과 중동, 중남미 개입에서 봐왔듯이 미국의 전통이기도 하다. 지금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그 같은 십자군 전쟁을 추구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그 길로 간다면 전 세계를 위해 잘못된 일일 뿐 아니라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미·중 전략적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싶은가.
나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신냉전이 아니라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제·금융, 무역·산업정책, 기후변화, 사이버안보, 생물 다양성 보전, 지역 및 세계 안보, 비핵화 등 핵심 사안들 모두를 논의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정부 대 정부(G to G) 간 실무그룹을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미·중 두 나라의 대학과 싱크탱크, 시민사회단체 사이에서도 트랙 II(반관반민) 외교가 폭넓게 이뤄져야 한다. 미·중 관계는 양국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계(crucial relationship)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트럼프처럼 중국을 향한 예측할 수 없는 적대적인 행동이 아니라 안정적이고 제도화된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냉전에 동맹을 결집하려는 방식의 반중 동맹(anti-China coalition)은 피해야 한다. 반중 동맹을 결성하려는 노력은 모두에게 아주 위험할 것이다.
제프리 삭스 교수의 지난해 우크라이나 키예프 강연[삭스 교수 홈페이지]

제프리 삭스 교수의 지난해 우크라이나 키예프 강연[삭스 교수 홈페이지]

동북아와 남중국해 지역에선 미·중간 군사적 대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미·중 두 나라는 새로운 군비경쟁을 서로 부추길 게 아니라 지역과 세계 안보에 관한 협상을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가 돼야 한다.
바이든은 미국에서 1000만명을 넘은 코로나19 확산 통제에 성공할까.
나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공중보건 개선책들과 코로나19 백신의 광범위한 보급을 결합하는 조치를 시행함으로써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칭찬했지만, 한국인의 불편과 고통은 마찬가지다.
한국은 정말 이 팬데믹을 억제하는 일에 관해선 세계 최고의 나라 중 하나다. 나는 한국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하며 또 감사한다. 나는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강력한 경제 회복과 녹색 회복(green recovery:탈탄소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아세안+한·중·일·호주·뉴질랜드 15개국 참여)에 가입한 이웃 나라와 협력할 것을 촉구하고 싶다. 한·일·중 3국이 모두 현세기 중반(중국의 경우 2060년)까지 탈(脫) 탄소화를 약속했다는 사실은 녹색 회복을 위한 커다란 희망이자 기반이다.
그렇다면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언제쯤 코로나19 경기침체에서 회복하겠나.
이 전염병은 아마도 2021년에 정점을 찍을 것 같다. 그리고 세계 경제는 2021년부터 회복하기 시작해 2022년부터 강세를 보일 것이다. 이는 세계 각국이 새로운 백신의 혜택을 공유함으로써 팬데믹을 종식하고 녹색 회복에 나서기 위해 얼마나 글로벌 협력 체제를 이룰 수 있느냐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제프리 삭스 교수는

삭스 교수는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현 하버드대 교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 함께 미국 경제학계의 3대 슈퍼스타로 꼽힌다. 하버드대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9세에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가 됐다.

그는 행동하는 경제학자로 저개발·개발도상국 빈곤 퇴치에도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유엔 새천년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위한 '밀레니엄 빌리지' 사업에 세계적 록그룹 U2의 보컬인 보노,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 팝스타 마돈나 등과 함께 하기도 했다.

그가 출간한 『빈곤의 종말(The End of Poverty)』(2005·사진)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에게 필독서로 추천해 화제가 됐다. 이 책의 추천사도 보노가 썼다. 또 볼리비아와 폴란드·러시아 등 여러 옛 사회주의 국가의 시장경제로 개혁의 자문을 맡아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삭스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린 고금리 처방을 강력하게 비판한 인물로 한국에는 더 유명하다. 2012년부터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의 지원으로 창설한 국제 전문가 단체 유엔지속가능개발해법네트워크(SDSN)를 이끌고 있다. 최근 CNN 방송 칼럼니스트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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