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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보드 사고’ 피해자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비 우선 지급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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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0일부터 보행자가 전동킥보드에 의해 사고를 당하면 피해자와 가족의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비를 우선 받을 수 있도록 ‘무보험차상해특약 표준약관’이 변경 시행된다. 최근 전동 킥보드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관련 사고가 급증하고 있지만 피해 보상이 어려운 데 따른 조치다. 피해자 자신 또는 가족의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비를 받으면 보험사가 추후 가해자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운용될 방침이지만 근본적으로 전동킥보드 안전·피해보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형 이동수단 교통사고 발생 현황

개인형 이동수단 교통사고 발생 현황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에 따르면 2017년 117건이던 전동킥보드 관련 사고는 2018년 225건, 지난해엔 447건으로 3년 만에 약 3.8배로 증가했다. 사고로 인한 부상자 수도 이에 비례해 2017년 124명에서 2018년 238명, 지난해엔 473명으로 비슷한 속도로 증가했다. 개인형 이동장치 자체가 크게 늘어나면서 사고 건수도 함께 늘어난 셈이다.

‘무보험차 상해특약 약관’ 변경 시행 #보험사가 추후 가해자에 구상권 #이용자 연령 확대에 대한 우려도 #근본적 안전·피해보상 대책 시급

전동킥보드=자전거…사실상 완화된 도로교통법

공용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는 있는 한 시민. 뉴스1

공용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는 있는 한 시민. 뉴스1

문제는 시장의 성장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달 10일 시행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이용 문턱은 오히려 낮아진다. 교통당국이 전동킥보드를 자전거와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PM, Personal Mobility)'로 분류하면서다. 이에 따라 현재 전동킥보드는 만 16세 이상 운전면허취득자만 이용할 수 있지만, 운행 제한 연령이 만 13세로 낮아지고 무면허 이용도 허용된다. 안전모 착용 규정은 있지만 관련 벌칙 조항이 삭제되면서 실효성이 낮아졌다.

법 개정을 추진한 경찰청과 국토교통부 등은 “법률 개정의 핵심은 전동킥보드를 개인형 이동장치로 분류함으로써 인도나 차도나 아닌 ‘자전거도로(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자전거 전용차로 등)’를 이용하도록 개선한 것”이라며 “현재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전기자전거의 속력이 시속 25㎞, 무게 30㎏ 미만임을 고려하면 전동킥보드는 차량보다는 자전거로 분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용자 안전 교육·대여업체 보험가입 의무화 등 세부 방침은 8월 ‘개인형 이동수단 이용 활성화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가칭)’을 별도 발의한 상태다.

피해자 보험사가 50만~1억5000만원 보상…보험업계 "부담"

전동킥보드 무보험차 보상한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동킥보드 무보험차 보상한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기존 제도가 완화됐지만 새로운 제도는 정착되지 않는 ‘정책 시차’가 발생하며 전동킥보드가 낸 보행자·차량 사고에 대한 보험 제도는 미비점이 많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최근 전동킥보드 사고로 보행자가 다칠 경우 피해자 측 자동차 보험에서 치료비가 우선 지급될 수 있도록 무보험차상해특약 표준 약관을 개정하고 10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금감원은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전동킥보드의 자전거도로 통행이 증가해 보행자 상해 피해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전동킥보드가 '자전거 등'으로 분류돼 보험 보상 여부가 불명확하다”며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개정 약관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관련 치료비 보상한도는 최소 50만원(상해 14급·팔다리 관절 염좌 등)에서 최대 1억5000만원(사망)에 이른다. 피해자의 보험사는 추후 가해자 측에 구상권을 청구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사고를 낸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보험금을 선(先)지급해야 하는 보험사로서는 부담이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정부 차원에서 미성년자에 대해선 구상권 청구가 어렵도록 하는 제도가 추진되고 있는 데다 구상을 다 받아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특히 최근 이용 가능 연령이 낮아지고 사고가 빈번해지는 점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이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안전에 대한 우려도 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는 9일 입장문을 내고 "학생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법률이 교육계 의견 수렴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개정돼 우려스럽다”며 “정부와 국회는 학생 안전 보장을 위한 도로교통법 재개정과 제도 마련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자구책 마련 나선 전동킥보드 공유 업계…“면허 의무 유지”

서울 잠실역 1번 출구 앞에 주차돼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 박민제 기자

서울 잠실역 1번 출구 앞에 주차돼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 박민제 기자

전동킥보드 공유업체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글로벌 전동킥보드 공유사업자의 국내 법인인 라임코리아는 한화손해보험과, 빔모빌리티코리아는 KB손해보험과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공유 전동킥보드를 이용하다가 탑승자의 과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제3자 배상책임(대인·대물사고) 등을 보험사가 보장하는 내용이다. 라임코리아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돼도 기존처럼 만 18세 이상 사용자만 전동킥보드를 타도록 제한하고 운전면허 등록도 현행과 같이 시행하기로 했다. 또다른 전동킥보드 공유업체 씽씽의 운영사 피유엠피는 내년 상반기부터 블랙박스가 탑재된 제품을 상용화해 뺑소니 사고를 방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보험료 산정의 근거가 되는 데이터 부족 등으로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전동킥보드 관련 보험 상품은 여전히 없는 실정이다. 전제호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전동킥보드의 무게·최대 속도 등만 고려하면 자전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바퀴가 작고 자그마한 충격에도 운전자가 넘어질 수 있는 등 현실적 차이가 있어 굳이 자전거를 따라갈 필요는 없다”며 “자전거도로의 70%가 보행자·자전거 겸용도로인 만큼 최대 속도(시속 25㎞) 기준 등을 보행자에 맞춰 현실성 있게 조정하고 이용자 연령 확대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정원·남궁민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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