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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급등에 허리 휘는 가계…전세대출 100조 넘어섰다

중앙일보

입력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서만 21조원 이상 늘었다. 가파른 전셋값 상승의 후폭풍이다.

전세물량 품귀가 이어지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폭이 5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8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매물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뉴시스]

전세물량 품귀가 이어지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상승폭이 5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한 8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매물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뉴시스]

9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NH농협‧신한‧우리‧하나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10월 말 기준 전세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2조6206억원 증가한 101조6828억원이었다. 잔액이 100조원을 넘어선 건 2016년 관련 집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전월 대비 잔액이 소폭 감소한 농협은행(19조6456억원)을 제외하고 국민(20조4491억원)‧신한(23조2447억원)‧우리(18조8056억원)‧하나(20조1612억원) 등은 모두 잔액이 증가했다.

5대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인다. 전세대출 잔액의 증가 자체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문제는 증가 속도다. 지난해 말 80조원에서 단 열달 만에 21조2167억원(26.4%) 늘었다. 은행권에선 전세대출 증가의 원인으로 최근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전셋값을 꼽는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3677만원으로 석 달 전인 7월보다 7.52% 상승했다. 일부 오피스텔 전셋값은 매매가를 추월했다.

전세대출 증가가 저금리 탓?…전문가 “No!”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매물이 급감하고, 전셋값도 크게 뛴 영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임대차3법 시행 후 매물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전셋값이 올랐고, 이후 대출 증가세가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1일 국민은행이 발간한 ‘월간 주택시장 동향’에 따르면 10월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191.1을 기록했다. 2001년 8월(193.7) 이후 19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전세수급지수가 높다는 건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임대차3법으로 시장에 나오는 매물은 줄었는데 전세 수요는 늘고 있다”며 “전세대출에서 부족한 부분은 신용대출로 가고, 그래도 모자라면 불법 사금융으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전세대출 증가 이유에 대해 “(최근 금리가 하락해) 같은 이자를 낼 때 금융권에서 빌릴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다 보니 수요 측면에서 돈을 더 많이 빌려서 더 좋은 곳으로 가려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저금리가 전세대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저금리 기조는 오래전부터 점진적으로 지속해 온 것인데, 이를 올해 7월부터 많이 늘어난 전세대출의 이유로 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0.11.9 오종택 기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0.11.9 오종택 기자

전셋값이 상승 기조를 이어가면서 전세대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심 교수는 “올해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되는 시점에 수요가 쏟아질 텐데, 전·월세 상한제 때문에 공급은 위축되면서 전셋값은 더 오를 것”이라며 “대출 역시 당분간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향후 집값이 하락할 경우 급증한 전세대출이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대출은 목적과 기간이 정해진 대출이어서 신용대출보다는 위험성이 낮다”면서도 “향후 집값이 내려가면 전세자금으로 투자 등 운용을 하던 집주인이 이를 회수하면서 금융시장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은행권이 대출 위험 관리를 위해 전세대출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10월 말부터 연말까지 전세자금대출 상품인 ‘우리전세론’을 조건부 취급 제한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와 대출 속도 조절을 위해 한시적으로 취급 제한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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