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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국 바이든 시대 긴급진단

분열된 미국 정치에서 유일한 합의는 ‘중국 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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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② 바이든의 통상 전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대선 승부처인 러스트 벨트의 중심부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들과 만나 일자리 복원 계획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대선 승부처인 러스트 벨트의 중심부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들과 만나 일자리 복원 계획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될 조 바이든. 그는 평생을 원칙과 타협을 신조로 살아온 정치인이다. 변칙과 화려함으로 사업 현장과 연예계를 누볐던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빛과 어둠처럼 대조적이다. 집권 4년 내내 미국의 근육질 힘에 의존하면서 파괴와 변칙, 깜짝 쇼로 일관했던 트럼프의 통상정책을 바이든은 어떻게 바꿀 것인가??

다시 세계 주도할 미국 구상하면서 #다자주의 외교통상 체제 복원할 듯 #중산층 위한 일자리 대통령 자임 #관건은 러스트 벨트와 중국 대응

미국이 세계질서를 주도한다고 왜 돈과 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가졌던 트럼프는 규범 중심 다자체제와 동맹을 중시해 온 미국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의 근간을 부정하고 훼손했다. 트럼프의 일탈 행위 목록은 길다. 전임 정부가 주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한다고 위협하면서 개정 협상을 했다. 외국 철강의 수입 증가가 미국안보를 위협한다는 궤변을 내세워 동맹국인 한국·일본에도 체제 경쟁국인 중국과 같은 고(高)관세를 물게 했다.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국을 탈퇴시켰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전 세계적 노력의 결실인 파리협정에서도 탈퇴했다.

바이든은 다시 세계를 주도할 미국을 구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물려받은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국내적으로는 구조적 양극화, 대외적으로는 체제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이 바이든을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상황까지 겹쳤다.

중산층·서민의 일자리 복원이 지상 과제

2012년 2월 당시 시진핑 부주석이 캘리포니아를 방문했을 때 친선의 만남을 가진 바이든 부통령. 8년 전에는 둘 다 국가 2인자였던 이들은 곧 최고권력자로 경쟁하게 됐다. [AP=연합뉴스]

2012년 2월 당시 시진핑 부주석이 캘리포니아를 방문했을 때 친선의 만남을 가진 바이든 부통령. 8년 전에는 둘 다 국가 2인자였던 이들은 곧 최고권력자로 경쟁하게 됐다. [AP=연합뉴스]

대선 다음 날 아침이면 승패가 결정돼 온 그간의 미국 대선과는 달리 개표가 지연되는 가운데, 트럼프와 바이든이 각각 획득한 선거인단을 보여주는 방송에 등장하는 미국 지도는 미국 경제의 단층선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부(富)와 경제 권력의 중심인 동부의 금융, 서부의 기술 지대는 쇠락과 침체의 중서부 공업지역을 포위하고 있다. 세계 제조업의 메카였던 중서부 러스트 벨트는 냉전 종식 이후 가속화돼 온 세계화의 피해자다. 그 세계화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통합의 대통령을 자임하는 바이든을 짓누르는 키워드는 러스트 벨트와 중국이다.

트럼프는 러스트 벨트의 저학력 백인 남성들을 향해 “당신들의 불행은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과거 미국 정치인들이 외국과 잘못된 무역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2016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후, 아직 취임하지 않은 당선인 신분일 때 멕시코로 공장을 옮긴다는 중서부의 자동차 회사에 직접 압력을 행사해서 그 계획을 취소하게 했다. 통상 압박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일자리 대통령’의 탄생 순간이었다.

2017년 1월 취임식에서 트럼프는 내내 “미국 물건을 사라,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주문을 마법처럼 외쳤다. 비록 재선에 실패했지만, 그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지지표를 받은 대선 후보이기도 하다. 그만큼 트럼프식 대중영합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와 환경단체를 세력기반으로 두는 바이든 역시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고 있다. 그는 미국 중산층·서민층의 일자리 복원을 지상 명제로 내세우고 있다. 증세와 연방정부의 대대적인 공공구매를 활용한 그의 중산층 복원 계획은 의회와의 타협이 필요하다.

가치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 중국 대처

바이든 시대 통상정책의 핵심은 미·중 경제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다. 그의 숙제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전통적 경제 분야에서 중국식 경제가 야기하는 문제를 다루기에 무기력한 다자체제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나머지 하나는 세계 경제 지도를 다시 쓰고 있는 디지털 경제에서 중국의 기술 굴기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바이든의 주요 통상정책

바이든의 주요 통상정책

자동차·철강 등 전통적인 경제에서 미국은 중국 방식의 경제체제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덩치 큰 국영기업을 내세워 자국 시장을 독점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에서 압도적인 공급력을 무기로 시장점유율을 높여가는 중국과의 경쟁을 주주와 시장의 압박에 상시 노출된 시장 경제 체제는 감당하기 쉽지 않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미국은 중국이 더 개방적이고 개혁적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중국은 시장 경제화되지 않았고, 공산당과 정부의 경제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국에 투자한 외국기업들은 ‘시장 줄 테니 기술 주라’는 중국의 거래법칙에 새롭게 눈뜨고 있다. 시장경제를 상정한 규범 중심 다자무역체제는 이런 중국식 경제가 던지는 구조적·행태적 문제를 취급하기엔 역부족이다.

국가주도 경제체제인 중국과의 경쟁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불공정한 경쟁임을 미국은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은 이 문제에 대한 어떤 해법을 가지고 있을까. 트럼프의 대응방식은 미국의 일방주의였다. 한국·일본·독일 등 동맹국들을 미국에 무역수지 적자를 안겨주는 나쁜 국가로 취급하는 트럼프식 일방주의의 한계는 분명했다. 중국 시장의 마법에 홀려 있는 국가에 트럼프식 압박은 동맹의 마음을 살 수 없었다. 바이든 통상정책의 출발점은 트럼프가 무시한 동맹에서 시작된다.

바이든은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 중시 통상외교를 복원할 것이다.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던 가치인 민주주의·인권·시장경제·자유무역·공정경쟁은 바이든 통상외교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다. 바이든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함께 중국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편평하게 하는 노력을 시작할 것이다.

미·중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선택은

트럼프 때 본격화된 미국의 중국 기술 굴기 견제는 지속할 것이다.

오랜 정치경력에다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구축한 상당한 중국 인맥을 거느린 바이든이 중국에 유화적인 정책을 구사할 것이란 기대는 변화된 미국정치 분위기를 모르는 이야기다. 분열된 미국정치에서 유일한 합의는 ‘중국 때리기’다. 퓨 리서치(Pew Research)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3%가 중국인에 대해 비호감을 가지고 있다. 2016년에 그 숫자는 47%였다. 2년마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미국정치에서 중국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중국 때리기 바람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기술 굴기를 미국정치는 국가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이 부통령이었던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이미 화웨이의 배후에는 중국 정부가 있다는 의회보고서가 나왔고, 실리콘밸리의 기술과 인력을 휩쓸어가는 차이나 머니에 대한 경계는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 내 외국인 투자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심사하는 개혁법안이 민주·공화당 합의로 통과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끌어낸 미·중 무역협정(1단계 합의)에 대해 바이든은 중국 경제문제의 핵심인 보조금·기술굴기·국영기업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고 맹비난했다. 바이든은 중국과 어떤 협상을 끌어낼 수 있을까?

트럼프라는 정계의 이단아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탄생시킨 2016년, 미국은 규범 중심 다자체제를 버리고 자국 힘에 의존하는 일방주의로 선회했다. 기술과 무역 간에 존재했던 방화벽은 사라지고, 경제적 위협은 안보위협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20년, 트럼프는 역사 뒤로 퇴장할 운명이지만, 그가 남긴 국제통상의 혼돈과 혼란을 복원하는 문제는 쉽지 않다.

바이든 시대에도 미·중 경제충돌은 계속된다. 가치 중심 통상외교는 바이든의 새로운 무기가 될 것이다. 스스로 환경 대통령을 자임하는 바이든은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다시 복귀한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중국과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국과 협력과 경쟁을 동시에 해야 하는 딜레마를 미국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 온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 내 TPP재개 논의는 당장 한국에 밀려올 바람

미국이 주도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12개 국가의 TPP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중국이 21세기 통상규범을 쓰게 할 수 없다”는 전략적 구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했던 TPP는 2015년 타결되었지만,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가 집권 첫날 탈퇴를 공식화하면서 미국 없는 나머지 11개 국가만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남았다. 일본은 CPTPP의 주도국가였다.

미국이 다시 귀환한다면 CPTPP는 다시 TPP로 완전체가 될 것이다. 바이든은 다시 미국을 TPP에 가입시킬 것인가?  오바마가 TPP를 추진했지만, 그가 소속된 민주당은 부정적이었다. 바이든은 가치 중심 통상전략의 하나로 TPP를 활용할 수 있지만, 국내정치를 극복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과의 FTA 협상이 우선순위라는 이유로 TPP 가입 협상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간 한국 정부는 CPTPP 가입 여부를 두고 국내적 논의를 계속해 오다가, 2018년 한·일 무역갈등이 전면으로 부상하면서 논의는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미국에서의 TPP 논의 재개는 한국에 밀려올 바람이다. 한·미동맹, 한·일관계의 미래와 함께.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

최병일 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