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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김 나는 연어죽과 군고구마, 갓 담근 배추김치…늦가을 영양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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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한영실의 작심3주|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인디언 아라파호족이 부르는 11월의 이름이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찬 바람이 스며들어 마음까지 스산해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한 해가 아직 다 지나가지 않은 달이니 새해 첫날에 세웠던 계획과 다짐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볼 때다.

둘째주. 장 보호하는 유산균의 보고, 김치

겨울의 시작인 입동(立冬)이 지났다. 예로부터 입동(7일) 전후 일주일간이 가장 적당한 김장 시기로 전해져 왔지만 근래에는 지구온난화로 김장철이 늦어지고 있다. 김장은 어느 지역, 어느 가정에서나 ‘겨울의 반 양식’인 김치를 담그는 주요 행사다. ‘가을배추는 문 걸어 놓고 먹는다’는 옛말이 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릴 때 배춧잎이 단단하게 뭉쳐(결구) 당분이 고스란히 유지되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이 국내산 배추 23종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배추에는 강력한 항암 효과를 내는 글루코시네이트 성분이 풍부했다. 특히 인돌(indol)은 암 예방뿐 아니라 유해 세균을 없애는 항균 효과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시대의 한의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배추를 채소가 아닌 약초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배추가 주재료가 되는 김치는 고춧가루·파·마늘·생강·젓갈 등의 부재료에 포함된 다양한 영양소와 발효 과정을 통해 생성되는 유산균을 함유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영양 식품이다. 고춧가루의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은 위액의 분비 촉진, 살균 작용, 면역 세포의 활성 증진, 비만 억제, 지구력 증진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강의 진저롤 성분은 식욕을 증진시키고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며 항균 효과가 있다. 김치의 유산균은 장내 유해 물질들을 없애고 흡수율을 낮춰 장을 건강하게 만든다. 또한 유산균은 특정 발암물질에 대해 강한 항돌연변이 활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됐다. 맵고 짠 염장 식품으로 위암 발생과 관련해 여러 의구심이 제기됐으나, 너무 짜게 담그지 않고 적정량을 섭취한다면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셋째 주. 뇌에 좋은 오메가3의 보고, 연어

해마다 이맘때면 강원도 고성 명파천은 머나먼 바닷길을 되돌아 올라온 연어 떼로 장관을 이룬다. 연어는 알을 낳을 때면 자신이 태어난 강을 찾아 거꾸로 강을 오르는 모천회귀(母川回歸)의 습성을 가졌다. 고향을 향해 지느러미 허우적대며 자맥질하는 연어를 보며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고향을 잃고, 잊고 사는 부평초(浮萍草) 같은 우리네 삶을 생각해 본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서는 ‘세계 10대 수퍼푸드’ 중 하나로 연어를 꼽은 적이 있다. 연어에는 우리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가 많이 들어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인지 기능이나 학습 능력에 관여하는 영양소다.

뇌는 다른 조직에 비해 탄소수 18개 이상인 긴 사슬의 다불포화지방산으로 구성된 인지질이 많다. 뇌 세포막의 인지질은 50% 이상이 오메가3 지방산인 DHA로 구성된다. DHA는 식품으로부터 섭취되거나 오메가3 계열 지방산인 α-리놀렌산 또는 EPA로부터 합성된다. 특히 성장기에 오랜 기간 오메가3 지방산의 섭취가 부족하면 인지 기능과 학습 능력, 시각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여러 연구에서 노화 관련 인지 저하 및 치매에 대항하는 제1의 영양소가 오메가3 지방산이라는 사실이 규명됐다.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식품을 규칙적으로 섭취하는 사람은 인지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낮았다는 보고가 있다. 연어는 조리법도 다양해 솔잎을 태워 그 연기로 말리는 훈제 연어나 소금을 뿌려 굽는 구이 외에도 불린 쌀에 찹쌀을 섞어 연어와 밤, 대추 등을 넣고 끓인 연어죽도 별미다.

넷째 주. 고혈압 막는 칼륨의 보고, 고구마

22일은 소설(小雪)이다. ‘11월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는 속담처럼 기온이 급강하하고 첫추위가 닥치는 때다. 과일이나 채소가 부족해지는 겨울에 고구마와 말려둔 고구마 줄기는 든든한 간식과 반찬거리가 된다. 고구마에는 칼륨이 풍부하다. 칼륨은 체내의 과도한 나트륨을 체외로 배출시켜 고혈압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심장은 우리 몸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혈액을 인체 구석구석에 보낸다. 심장이 박동할 때 동맥 혈관에 흐르는 혈액의 압력을 혈압이라고 하며, 혈압이 일정하게 상승해 그 상태가 지속하는 것이 고혈압이다. 고혈압은 특별한 이유 없이 생기는 일차성 고혈압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칼륨이 풍부한 식품을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고구마는 가열해도 영양 손실이 거의 없다. 대부분 채소는 익히면 칼륨 성분이 90% 정도 빠져나가는데 고구마는 이런 유효 성분이 전분에 싸여 있어 절반 이상 남는다. 고구마에 풍부한 비타민C도 이런 이유로 조리 과정 중에 파괴되지 않아 삶거나 구워 먹어도 영양 손실이 적다. 고구마를 자를 때 나오는 하얀 즙, 얄라핀 성분은 변을 부드럽게 해서 식이섬유소와 함께 장내 유해 물질 배출과 변비 해소에 도움을 준다. 늦가을의 보양식 연어죽에 갓 담근 김장김치와 따끈하게 구운 고구마를 곁들이면 다가올 추위도 겁나지 않을 만큼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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