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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200만~300만원 월세 확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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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달 KB국민은행이 조사한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가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8일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KB국민은행이 조사한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가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8일 서울 송파구의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아파트 임대시장에서 전세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월세가 크게 오르고 있다. 서울 강남권에선 직장인 월급 수준인 200만~300만원의 월세를 요구하는 곳도 적지 않다.

아파트 월세지수 57개월만에 최고 #도곡렉슬 보증금 5.5억→2억 낮추고 #월세는 100만원→270만원 올려 #월세 물건도 임대차법 직전의 절반 #전세난 속 월세 가격 상승 부채질

KB국민은행 부동산정보팀은 지난달 12일 기준으로 조사한 ‘10월 주택가격 동향’ 보고서를 최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01.6(2019년 1월=100 기준)이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4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국민은행 월세지수는 서울에서 중형(전용면적 95.9㎡) 이하 아파트를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지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정보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래미안블레스티지(전용 84㎡, 16층)는 지난달 15일 보증금 10억원, 월세 120만원에 계약됐다. 전세와 순수 월세의 중간 형태인 ‘반전세’라는 게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엿새 뒤 같은 면적의 아파트(19층)가 보증금 10억원, 월세 18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올해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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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60㎡ 이하 소형 아파트의 월세도 급등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도곡렉슬(전용 59㎡)은 지난달 26일 보증금 2억원, 월세 270만원에 거래됐다. 석 달 전에는 같은 면적이 보증금 5억5000만원, 월세 100만원으로 거래가 성사됐던 곳이다. 임대 보증금을 3억5000만원 내리는 대신 월세는 170만원 올렸다. 두 사례만 놓고 보증금과 월세의 상관관계를 시중 이자율로 환산하면 연 5.8% 수준이다. 정부가 권장하는 전·월세 전환율(2.5%)이 현장에서 통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도곡렉슬 주변의 공인 중개업소 관계자는 “3000가구 아파트 단지인데 전세 물건은 없고 월세 물건도 2~3개뿐”이라며 “집주인들이 임대 보증금은 낮추고 월세는 높여서 물건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월세 물건의 감소는 가격 상승을 부채질한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8일 기준 서울의 아파트 월세 물건은 1만1342건이다.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5% 이내)를 담은 ‘임대차 2법’ 시행 직전(지난 7월 말 2만3525건)과 비교하면 월세 물건이 절반 정도로 줄었다.

전세 물건을 합쳐도 상황은 비슷하다. 8일 기준 전·월세 물건은 2만3595건으로 지난 7월 말(6만2398건)보다 60% 이상 줄었다. 기존 세입자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며 눌러앉는 경우가 늘면서 신규 세입자의 전셋집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정부가 전세난을 풀어낼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도 전·월세 주택을 구하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정부는 공공임대 주택을 확대하고 연말정산에서 월세 세액공제 혜택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장 급한 사람들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9월 전·월세 전환율을 기존의 연 4%에서 2.5%로 조정했지만 신규 계약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홍 부총리는 지난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특출난 (전세) 대책이 있으면 벌써 정부가 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민간 주택의 공급을 늘리지 않고서는 (전세난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더욱이 집주인이 불어난 세금(재산세+종합부동산세)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가능성까지 커졌다”고 우려했다. 김연화 IBK기업은행 부동산팀장은 “당장 대책을 내놓아도 실제로 시장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전·월세 급등세가 단기간에 진정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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