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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마부터 승리까지 바이든 '562일 대장정'…트럼프 공세, 실언, 스캔들 딛고 마침내 웃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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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 선언부터 당선 승리 선언까지. 조 바이든에게 562일간의 대장정은 바람 잘 날 없는 날의 연속이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민주당 경선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로막은 유세 일정, 막판까지 이어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뉴스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끝내 웃음을 지은 건 백전노장 바이든이었다.

예상못한 신예의 공격…경선부터 악재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7일(현지시간) 대선 승리 선언을 하고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7일(현지시간) 대선 승리 선언을 하고 사실상 당선을 확정지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4월 25일 바이든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만 해도 민주당내에서 그의 상대가 될만한 인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상원의원 37년, 부통령 8년 정치 이력이 그의 최대 강점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바이든 대세론’을 언급했고, 급진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과 엘리자베스 워런이 도전하는 구도였다.

하지만 시작부터 신예들의 공격 대상이 됐다. 민주당 첫 경선 토론부터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인종차별 의혹으로 공세를 퍼부었다. 피트 부티지지의 ‘젊은피’ 돌풍도 복병이었다. 지난해 9월 열린 민주당 5차 토론에서 바이든은 토론 초반부터 불안정한 답변은, 부티지지의 참신한 발언과 극적으로 대비됐다. 현지 언론들은 “1위 주자가 너무 준비가 안됐다”, “토론의 승자는 부티지지, 패자는 바이든” 이라는 악평을 쏟아냈다.

지난해 4월, 2020년 미국 대선에 도전한 24명의 민주당 후보들. 바이든(맨 아래 왼쪽에서 네 번째)은 경선 초기 부진을 극복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4월, 2020년 미국 대선에 도전한 24명의 민주당 후보들. 바이든(맨 아래 왼쪽에서 네 번째)은 경선 초기 부진을 극복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로이터=연합뉴스]

예비경선이 시작된 지난 2월 적신호가 켜졌다. 아이오와주 첫 예비경선에서 4위, 두 번째 경선지인 뉴햄프셔주에서는 5위로 떨어지면서다. 3차례의 경선에서 부티지지와 샌더스가 1승씩 주고받으면서 ‘부티지지 대 샌더스’ 양자 구도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3월 1일 사우스캐롤라이나 4차 경선부터 판세가 뒤집혔다. 흑인지지층 확보와 중도성향 후보들의 단일화로 흩어진 표심이 바이든에게로 결집되면서 첫 승리를 거뒀다. 사흘 뒤 ‘슈퍼 화요일’로 불리는 5차 경선에서 10개주 압승을 거두며 대세론을 부활시켰다. 이후 워런, 블룸버그, 샌더스 후보가 연이어 경선 하차를 선언하면서 바이든의 독주가 시작됐다. 6월 초 대선후보 확정에 필요한 주별 대의원 수 2000명을 확보하고 8월 19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공식 후보로 지명됐다.

불륜·성추행 스캔들, 실언에 위기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은 안정감으로 승부를 걸었다. 오바마 행정부 부통령이라는 정치 이력에 풍부한 국정경험을 내세웠다. 초유의 코로나19 사태에서 이런 안정감은 큰 미덕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오랜 정치경력 탓인지 그도 각종 스캔들을 피하진 못했다. 지난 4월 샌더스 상원의원의 경선 하차로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로 정해진 상황에서 27년 전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다. 1993년 바이든의 사무보조원이었던 타라 리드(56)는 과거 바이든으로부터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질 바이든 여사. 지난 8월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지지자들에 환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질 바이든 여사. 지난 8월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지지자들에 환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8월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날에는 아내 질 바이든과의 결혼 전 불륜설이 터졌다. 질 바이든의 전 남편 빌 스티븐슨(72)은 바이든이 질과 바람을 피워 자신의 가정이 파탄났다고 주장했다. 대선 3주를 남겨두고는 아들 헌터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헌터가 몸담았던 우크라이나 에너지 업체의 비리 수사를 바이든이 무마시켰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헌터 바이든의 마약 정황, 성관계 영상이 담긴 사생활 자료가 대거 유출됐다는 보도까지 나온 것이다.

중요한 시기마다 터진 악재였지만 바이든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 건 잇단 실언이었다. 바이든은 지난 5월과 8월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나중에 고민한다면 흑인이 아니다”,  “라티노 미국인은 흑인계 미국인과 다르게 다양한 태도를 가졌다”고 말해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할리우드의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두 번째 대선 토론회를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트 할리우드의 시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두 번째 대선 토론회를 지켜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유세 도중 “민주당원으로서 ‘상원의원’에 출마했다”는 말실수도 두 번이나 반복했다. 바이든은 곧바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다고 정정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조롱을 피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7세의 바이든이 치매에 걸렸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바이든을 깎아내렸다.

최대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토론회였다. 9월29일 열린 첫 TV토론회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 맞서 막말을 퍼부었다. 바이든은 자신의 말을 가로막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입 좀 다물어 주겠나”(Will you shut up, man?)고 말했다. 그 뒤에도 끼어들기가 계속되자 헛 웃음을 지으며 “계속 지껄여라”(Keep yapping, man)고 중얼거렸고,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이 광대(clown)에게는 어떤 말도 붙이기 어렵다”고 빈정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대선 11일을 앞두고 진행된 최종 토론에서 바이든은 다시 차분한 신사 이미지를 선보였고, 결국 승자로 남았다.

닷새 간의 접전…결국 승자로 남았다

11월 3일 대선과 함께 시작된 개표도 피 말리는 접전이었다. 개표 초반 바이든은 불안하게 출발했다. 가장 많은 선거인단 29명이 걸려있는 플로리다주부터 트럼프 대통령에 넘겨주며 박빙 승부를 벌였고, 대선 다음 날까지 대통령이 확정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개표 중반부터 전세가 역전됐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참여한 우편투표함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다. 격차가 점점 좁혀지더니 4일 위스콘신주와 미시간주에서 연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기 시작했다. 바이든 후보는 선거인단 수는 253명을 확보하며 당선 가능성을 높였다.

바이든 후보는 7일 승리를 공식 선언하며 "미국을 다시 세계 존경받는 나라 만들겠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바이든 후보는 7일 승리를 공식 선언하며 "미국을 다시 세계 존경받는 나라 만들겠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러스트벨트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선거인단 20명), 남부 선벨트 조지아(16명), 그리고 네바다(6명), 애리조나(11명)가 끝까지 애를 먹였다. 네바다와 애리조나에서 우세했지만 격차가 벌어지지 않아 불안했고, 펜실베이니아와 조지아의 승부도 결론이 늦춰졌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중단을 요구하며 줄소송 공격에 나섰다.

돌파구는 선거 닷새 째인 7일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렸다. 현지 언론은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하며 선거인단 과반수인 273석을 확보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승리 선언을 늦추며 "인내하라"며 지지자들을 다독이던 바이든 후보는 이날 오후 8시 마침내 활짝 웃으며 승리 선언을 했다. 출마 선언을 한 지 562일만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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