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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흑인 부통령 해리스, 저격수서 차기 대권후보 반열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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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우리가 해냈어요. 당신이 이제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될 거예요."
민주당 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56)는 승리가 확정됐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 조 바이든 당선자와 통화에서 "우리가 해냈다"며 연신 감격해했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공원에서 통화하는 영상을 직접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바이든이 대통령직에 오르면 해리스도 다양한 ‘최초’ 수식어를 역사에 남기게 된다. 최초 여성 부통령이자, 최초 아시아계 부통령, 그리고 최초 아프리카계(흑인) 부통령이 그것이다.

지난 8월 19일 미국 델라웨어주 웰밍턴 체이스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AFP=연합뉴스]

지난 8월 19일 미국 델라웨어주 웰밍턴 체이스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 [AFP=연합뉴스]

경제학자인 자메이카 이민자 출신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와 암 연구자인 인도인 어머니 시아말라 고팔란 해리스 사이에서 1964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해리스는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2011년 캘리포니아 검찰총장을 지냈다. 이후 그는 2016년 11월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아시아계에 흑인, 게다가 여성’이 차별화 요소로

유색인종에 여성인 그는 미국 사회에서 비주류라는 차별의 굴레를 안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배경이 정치적 성장 과정에선 그를 차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흑인 여성으로 처음 샌프란시스코 검사장과 캘리포니아 검찰총장에 오르자 대중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흑인 여성으로는 역대 두 번째 상원 의원으로 선출된 해리스는 현재 미 상원에서 유일한 흑인 여성 의원이기도 하다.

미국 첫 흑인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 첫 흑인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바이든의 러닝메이트가 된 데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올해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미 전역에 확대되자 흑인 부통령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해리스 역시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당당하게 여겨왔다고 한다. 백인 사회에서 고교 시절을 보낸 그는 이후 워싱턴 D.C.에 있는 대표적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에 진학해 정치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해리스는 지난해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자 시절 흑인들의 주택 구매 자금을 지원하는 1000억 달러 규모의 기금 조성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공립학교 운영 방식 변경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바이든과 다른 해리스, 그게 강점이 됐다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27일 민주당 첫 TV 경선 토론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스쿨버스 통합 반대 전력을 비판한 뒤 "그 시절 버스로 등교하던 작은 어린 소녀가 나"라며 공개한 사진.[카말라 해리스 트위터]

카말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27일 민주당 첫 TV 경선 토론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스쿨버스 통합 반대 전력을 비판한 뒤 "그 시절 버스로 등교하던 작은 어린 소녀가 나"라며 공개한 사진.[카말라 해리스 트위터]

성별과 인종적 배경만이 아니다. 해리스는 바이든이 지니지 못한 장점과 능력을 고루 갖추고 있어 민주당의 득표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 77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 될 바이든에 비해 해리스는 56세로 우선 젊다. ‘70대 백인 남성 엘리트’라는 바이든의 이미지를 보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이 '졸린 조(Sleepy Joe)'라고 비아냥거리는 바이든의 어눌한 이미지도 해리스 당선자가 특유의 전투력으로 희석한 것으로 분석된다. 해리스는 민주당 경선 때 바이든을 가장 공격적으로 몰아붙여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지난해 6월 민주당 경선 TV 토론회에서 해리스는 버싱 정책(busing·학교 버스에 흑백 학생이 섞여 앉도록 하는 정책)에 반대한 바이든의 이력을 겨냥해 “캘리포니아에서 버스로 통학한 작은 소녀가 인종차별로 상처를 입었다. 그 소녀가 바로 나”라며 “당신은 버싱 반대에 협력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의 당황한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고, 바이든의 아내 질 바이든은 그런 해리스에게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질 바이든은 장남(보 바이든)과 가깝게 지내던 해리스를 떠올리며 “보가 늘 해리스를 높게 평가했는데 마치 배를 세게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해리스를 “못됐고, 무례한 사람”이라고 비판하며 그의 전투력을 경계하곤 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이유로 “두려움 없는 전사”라는 점을 꼽았다.

벌써 첫 흑인 여성 대통령 기대감까지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왼쪽)가 지난 8월 11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사진은 부통령 후보 발표 직후 하이파이브하는 두 사람.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왼쪽)가 지난 8월 11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사진은 부통령 후보 발표 직후 하이파이브하는 두 사람. [EPA=연합뉴스]

대선 과정에서도 전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혁혁한 전과를 올린 해리스는 '의전용 부통령'에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 언론은 해리스가 조지 W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각각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 바이든에 버금가는 ‘실세 부통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벌써 해리스를 차기 민주당 대권 후보 1순위로 꼽는 관측까지 나온다. 고령인 바이든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면 현직 프리미엄을 이어받는 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부통령은 단숨에 유력한 대권 후보로 올라서게 된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을 때 “해리스는 미국 첫 흑인 여성 부통령 또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럴 때가 됐다”고 논평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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