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속여 환상을 만들다'…한·미 과학자 공동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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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먹거나 섬광을 보면 환상이 나타난다. 의학계의 연구 결과 환상의 형태는 주로 오로라처럼 화려하면서도 환상적인 색체가 섞인 것으로, 마약 복용자나 정신병자들을 흥분시킨다.

이들은 마치 눈으로 직접 본 듯 흥분한다. 그러나 이런 환상은 눈으로 볼 수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의학계와 심리학자들의 연구 영역이었던 이런 환상에 대한 연구에 뇌과학자들이 뛰어들고 있다.

정신병자나 마약 복용자를 대상으로 한 약리학이나 심리학 측면의 연구가 아니다. 정상인을 대상으로 환상을 인위적으로 재현해 뇌와 환상의 관계를 밝혀 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과학연구센터와 미국 유타대가 공동연구를 시작했으며, 미국 공군연구소도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그동안 의학계에서는 환상이 어떨 때 나타나는가를 밝히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 개발 등에 초첨을 맞춰 왔다.

병자들이 겪는 환상은 느끼는 사람마다 그 형태나 색상 등에 차이가 있다. 경희의료원 신경정신과 장환일 교수는 "환상은 신경간에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인 도파민이나 세라토닌 등이 많거나 적게 분비돼 일어난다.

약물의 경우 이들 신경전달 물질의 양을 조절하는 방법을 주로 써 환상을 치료하고 있다"고 말한다. 환상을 겪는 사람들은 마약 복용자나 간질 환자, 편두통 환자, 심신이 허약한 사람, 저중력 상태의 비행사 등이다.

환상을 재현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뇌의 어느 부위가 어떤 형태로 작용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그같은 환상을 느끼는지는 아직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정상인에게 환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착시를 일으키는 무늬를 앞에 놓고 자동으로 빠르게 켜졌다 꺼졌다 반복하는 섬광을 뒤에서 비춰 준다.

섬광은 초당 15번 정도 깜박이며, 밝기는 촛불 80개에 해당한다. 착시를 일으키는 무늬는 백색 바탕에 흑색의 줄이 사각형 중심을 향해 그어져 있거나, 서로 말려 들어가는 원 여러개를 겹쳐 동영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런 방법으로 미국의 한 연구소가 벌인 실험 결과 실험받는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긴 했어도 환상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심원이 겹쳐지거나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듯한 모양, 흑백 삼각형이 중심 쪽으로 놓여진 모양 등이었다.

KAIST 뇌과학연구센터 윤효운 박사는 "뇌에는 눈으로 보는 영상을 알아보는 질서정연한 순서가 있는 데 그 체계가 혼란에 빠지면 환상이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환상과 뇌 활동 관계를 밝히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뇌의 자극만으로 기분을 좋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들 수 있다. 정신병자들의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다.

또 과거를 회상하면서 거짓말을 할 때와 진실을 말할 때의 뇌의 활동 양상을 구별하는 데도 이용이 가능하다.

이런 연구는 자기공명단층촬영(MRI)장치의 발전으로 속도를 더하고 있다. 뇌의 활동 부위를 절개하지 않고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환상과 착시는 완전히 다르다. 착시는 어떤 형상을 봤을 때 정상인의 경우 모두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 글씨가 커보인다든가, 실제는 직선인 데 굽어 보인다든가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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