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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디올 재킷이 내 캔버스” 화가 차경채의 특별한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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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술가 차경채씨는 1980~90년대 빈티지 디올·리바이스 재킷의 등을 오리고 벨크로를 이용해 자신의 그림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즉, 재킷은 옷이자 움직이는 그림액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술가 차경채씨는 1980~90년대 빈티지 디올·리바이스 재킷의 등을 오리고 벨크로를 이용해 자신의 그림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즉, 재킷은 옷이자 움직이는 그림액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빈티지 디올을 캔버스로 사용하는 화가.’ 지난달 15일 유명 패션 잡지 ‘보그’ 미국판 온라인 기사의 제목이다. 영문 이름 에스텔(Estelle), 한국 이름 차경채(28)씨의 인터뷰 기사다.

페미니즘·환경 이슈 작품에 담아

미국 보스턴의 예술대학 SMFA와 터프츠 대학에서 각각 순수미술과 철학을 공부한 차씨는 현재 ‘eee’라는 레이블을 운영하며 그만의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1980~90년대 생산된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과 리바이스 재킷의 등 부분을 네모나게 오려 모서리마다 벨크로(‘찍찍이’라 불리는 접착 도구)를 꿰맨 뒤 직접 그린 그림들을 붙인다. 빈티지 디올·리바이스 재킷은 차씨가 그린 그림의 움직이는 액자가 되는 셈이다.

“소수만 즐기는 순수예술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려 패션을 접목했어요.”

차씨는 패션학교 파슨스 파리 분교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단기과정으로 패션 디자인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패션 디자이너들이 좋아하지만 그림을 프린트로 옮기는 정도로 빌려 쓸 뿐이죠. 저는 입고 다니는 옷의 기능을 이용해 갤러리 벽에 걸린 작품들을 거리로 끄집어낸 거예요.”

벨크로를 사용하면 저렴해 보이지만 차씨가 이를 사용한 건 순전히 그림 때문이다. 옷핀, 똑딱이 단추 등 여러 방법을 써봐도 그림이 울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주는 도구는 벨크로였단다.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이 50~60년대에 ‘뉴룩’을 선보이면서 새로운 여성 패션이 등장했어요. 80~90년대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고 지위가 높아지면서 어깨에 뽕이 들어간 파워숄더가 등장하죠. 저는 이 두 시대에 나타난 여성 패션의 혁신적인 아름다움과 힘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여러 데님 브랜드 중 리바이스를 택한 건 그림을 잡아줄 만큼 튼튼하고 좋은 소재여서라고 한다.

“패션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할 때 버려지는 옷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리퍼포싱 밸류(repurposing value)’라는 건데 다른 목적(용도)에 맞게 고친다면 새로운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죠. 빈티지 제품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차씨는 페미니즘부터 환경 이슈 등에 대한 관점을 작품에 담았다. ‘스모킹 조디악’은 별자리 12개의 상징물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사람들은 미래가 궁금해 탄생 별자리로 점을 보면서 수명을 단축하는 흡연을 즐기죠. 모순이에요. 메멘토모리. 삶과 죽음은 나란히 존재한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중학생이던 2008년 고양시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대회에서 김연아 선수의 통역 자원봉사를 맡아 ‘통역계 김연아’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의 어머니는 피겨 스케이터 출신으로 스포츠학 박사인 설수영씨. 차씨는 어린 시절을 부모와 호주에서 지냈다.

“eee 웹사이트를 갤러리 사이트처럼 꾸민 것도 누구나 그림을 소유하는 경험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앞으로는 순수예술과 미디어 아트를 접목할 계획입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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