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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지배구조’ 결국 관치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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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조성욱

조성욱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를 규율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놓고 재계 반발이 일자,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사진)가 재계 논리를 반박하는 자료를 27일 내놨다.

“총수일가·지주사 지분율 규제 합당” #공정위, 법개정 반발 재계에 반박 #재계 “공정위 생각에 억지로 맞춰”

이에 따르면 기존에는 총수일가 지분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회사를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으로 지정했지만, 이를 몽땅 20%로 일원화했다. 업계에선 그간 총수일가 지분율을 규제 선상 바로 아래(상장사 29.9%)로 줄여왔다. 사업 특성상 내부거래가 많은 기업 내 전산관리회사(SI 부문)의 총수 지분을 사모펀드 등에 매각하는 거래도 잦았다. 공정위는 이를 ‘규제 사각지대’라고 표현한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위법이 될 요인을 피해 규제 선 이하로 지분을 줄이는 것”이라며 “합법적으로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를 제한하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지주회사가 계열사를 지배할 때의 의무 보유 지분율을 높일 필요성도 강조했다. 재계는 연구·개발이나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할 돈을 지주사 지배력을 키우는 데 쓰게 돼 낭비라는 지적이다.

이에 공정위는 “지주회사가 지배의 책임성을 담보하는 데 현행 지분율(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이 과연 충분한지는 문제”라고 밝혔다. 또 “지주사가 (지배력을 높이려고) 추가로 주식을 갖기 위해 쓴 돈은 어차피 한국 경제 울타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경제 전반으로 볼 때 투자자금이 줄어든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지주사에 주식을 파는 투자자 중에선 외국인도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 울타리’에 있다고 보기만은 힘들다. 기업이 지분율 요건을 맞추기 위해 이들의 지분을 사들이면 국부 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모기업의 지배력은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시장에서 이미 판단하고 있고, 이에 맞춰 민간 자율로 지분 보유 규모를 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또 가격담합 등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재계 우려도 일축했다. 공정위는 “담합 가담자 외에는 구체적으로 담합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소·고발이 쉽지 않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업을 방해하려는 경쟁사 등이 증거 수집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 제도를 악용, 음해성 고소·고발을 남발할 것으로 우려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지배구조 형태를 시장에 억지로 맞추려는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사람을 침대 크기에 맞게 자르고 늘리는 그리스 신화 속 괴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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