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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지정학 갈등과 코로나 위기, 다자주의로 해법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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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강볼드 바산자브 유엔 아·태 경제사회위원회·동북아 사무소 대표

강볼드 바산자브 유엔 아·태 경제사회위원회·동북아 사무소 대표

오는 24일은 유엔(UN) 창설 75주년 기념일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전대미문의 지구적 보건 위기와 그에 따른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유엔이 75주년을 맞는다.

협력보다 각자도생하는 동북아 #네트워크·포용적 다자주의 절실

유엔은 팬데믹·기후변화 등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다자주의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일부 국가들의 방역 모범 사례들이 다른 나라들에 공유돼 효율적 해법을 찾는 데 시간과 비용을 줄여 줬다.

이런 사례는 앞으로 코로나 극복과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를 달성하는 긴 여정의 출발에 불과하다. 악화하는 기후위기, 국내·국제적 불평등 구조, 생물 다양성 훼손, 지정학적 갈등 등 많은 문제는 다자주의적 접근과 해법이 필요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총회 75주년 행사에서 네트워크 다자주의와 포용적 다자주의를 강조했다. 네트워크 다자주의는 유엔과 다양한 국제기구·지역기구·무역블록 등이 긴밀하고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포용적 다자주의는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도시·기업·청소년 등 다양한 분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다자주의는 동북아에서도 매우 필요하다. 역내의 복잡한 정치·안보 문제가 있어도 동북아 지역은 경제를 중심으로 점진적 지역 통합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지정학적 갈등을 논의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다자체제는 ‘동북아 패러독스(Paradox)’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내 국가 간 경제 의존성이 높은데도 정치·안보 협력은 이에 못 미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 이외 영역의 기능주의적 협력도 매우 미흡하다. 한·중·일 3국의 경우 20여개 장관급 협의체를 운영할 정도로 협력 영역을 확대·심화해오고 있지만, 실질적 협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동북아 차원의 상호의존 증가를 고려할 때 동북아의 다자주의는 북한·몽골·러시아까지 확대해야 한다. 역내 모든 국가가 상호 기여와 편익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의제가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다자주의 협력이 필요하다.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ESCAP) 동북아 사무소는 2010년 인천 송도에 설립됐다. 필자는 한국 주재 몽골 대사(2014~2018)를 거쳐 2019년 1월부터 동북아 사무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북아 사무소는 그동안 중·몽·러 간 국제도로 운송협정 체결, 무역 원활화 협의 정례화, 동북아 전력망 연계 협력체 발족 등 동북아 지역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강화해왔다.

특히 동북아 환경 협력 프로그램의 사무국으로서 동북아 청정 대기 파트너십과 동북아 해양 보호구역 네트워크 발족 등 역내 환경 협력을 확대해왔다. 특히 북한의 지역 협력과 다자 협력 참여의 통로가 되고 있다.

코로나 와중에 동북아 각국은 연대와 협력보다는 각자도생 전략을 택했다. 그러나 세계적 보건 위기 속에서 감염병 대처에 취약한 국가들이 훨씬 큰 고통을 겪게 되므로 보건 분야를 중심으로 다자협력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일례로 지난 7월 코로나 대응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동북아 사무소와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공동 개최한 세미나는 70여 개국 2000여명이 참가할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동북아 다자주의는 역내 공통의 현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역외 국가와의 협력도 강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협력 기반 구축에 있어서 더욱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이 추진하는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는 고무적이다. 포괄적 다자기구가 없는 동북아에서 유일하게 역내 6개국(한·중·일·러·북·몽)을 포괄하는 동북아 사무소가 지역 협력을 위한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되길 기대한다.

강볼드 바산자브 유엔 아·태 경제사회위원회 동북아 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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