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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도 무릎꿇린 법, 구글 겨냥했다…미국 반독점 규제 역사는

중앙일보

입력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이라는 구호로 유명한 구글이 자국 정부에 의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기업으로 제소 당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이라는 구호로 유명한 구글이 자국 정부에 의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기업으로 제소 당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엔 구글이다. 120여년에 걸친 미국의 반(反)독점 규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업체인 구글이 장식하게 됐다. 미국 법무부가 20일(현지시간)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석유왕’ 존 록펠러와 투자은행 JP모건의 창업자 존 피어폰트 모건도 무릎을 꿇었던 칼날을 구글도 마주하게 됐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는 석유·철도와 담배, 통신에 이어 정보기술(IT)와빅테그까지 미국 경제 산업 구조가 바뀌는 패러다임 시프트마다 자율 경쟁을 독려하기 위한 규제 장치로 등장했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는 단순한 사법 당국의 기업 손보기가 아니다. 기업 간 건전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브레이크를 걸어온 역사적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읽어야 한다.

구글이 IT 업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남용해 독점을 강화한다면 ‘넥스트 구글’이 나올 수 없다는 우려가 녹아있다. 미국 검색엔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업계 지배력을 감안하면 제소는 시간문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견됐던 조치”라고 했다.

지난 7월 빅테크 CEO를 총출동 소환한 미 하원 반독점 소위의 청문회 현장. AFP=연합뉴스

지난 7월 빅테크 CEO를 총출동 소환한 미 하원 반독점 소위의 청문회 현장. AFP=연합뉴스

미국 역사상 첫 반독점법은 1890년 제정된 셔먼법(the Sherman Act)이다. '공정경쟁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으로 불리는 이 법은 대표 발의자인 공화당 존 셔먼 의원 이름을 붙였다. 록펠러가 1870년 세운 정유회사인 스탠더드오일이 미국 각지의 석유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미국 내 석유 생산량의 90%를 점유한 게 발단이 됐다.

남북전쟁(1861~65) 이후 미국의 경제와 산업 발전을 이끈 핵심축인 석유업을 특정 기업이 쥐락펴락하면서 각 주(州) 정부와 의회가 규제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결과 셔먼법이 제정됐다. 셔먼은 당시 “정치에서 전제 군주를 원치 않듯, 경제에서도 독점 기업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점 행위가 소비자 이익 및 기업의 공정한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해 위법 여부를 판단한다.

JP모건의 철도 기업의 독점행위를 비판하기 위한 캐리커처. 위스키 병에 '독점 위스키'라는 표시와 함께 모건이 "경쟁은 조금만 있는 게 좋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

JP모건의 철도 기업의 독점행위를 비판하기 위한 캐리커처. 위스키 병에 '독점 위스키'라는 표시와 함께 모건이 "경쟁은 조금만 있는 게 좋지"라고 말하는 것으로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

미국의 반독점 규제 역사에서 가장 굵직한 사건은 스탠더드오일의 해산이다. 미 법무부는 1909년 스탠더드오일을 셔먼법 위반으로 제소했고, 대법원은 1911년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며 기업 분할을 명령했다. 그 결과 스탠더드오일은 34개 기업으로 흩어졌다. 그 후신이 엑손모빌과 셰브런 등이다.

JP 모건이 소유했던 철도 기업인 노던 시큐리티즈 역시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고 해체됐다. 미국 담배 시장의 95%를 독점했던 아메리칸 타바코도 반독점 위반 혐의로 제소된 뒤 1911년 11개 회사로 찢겼다.

반독점법으로 기업 해체 수순을 밟아야 했던 '석유왕' 록펠러(왼쪽)와 JP모건(오른쪽). [중앙포토]

반독점법으로 기업 해체 수순을 밟아야 했던 '석유왕' 록펠러(왼쪽)와 JP모건(오른쪽). [중앙포토]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가 미국의 반독점 규제를 관장하는 현재의 구조는 1914년에 틀이 만들어졌다. 클레이턴법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이 제정되면서 미국의 반독점법은 모두 3개의 법령으로 구성된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1980년대 통신→1990년대 IT→21세기 빅테크

반독점 규제의 역사는 미국 산업의 변화와도 궤를 같이한다. 미국 산업의 중심이 통신업으로 바뀐 1980년대엔 당시 미국 최대 통신사였던 AT&T가 도마 위에 올랐다. AT&T는 당시 장거리 통신 사업 본부와 미국의 22개 지역의 시내 전화 사업을 독점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AT&T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했고, 법원이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AT&T는 1984년 7개 지방전화사업 회사를 포함한 8개의 개별 기업으로 분할됐다. AT&T는 장거리 통신사업만 운영하도록 했다. 이후 장거리 통신사업에서도 자유 경쟁이 활성화되며, 2000년 설립된 버라이즌이 AT&T를 제치고 2009년 미국 내 업계 1위가 됐다.

IT가 대세가 된 1990년대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규제 대상이 됐다. 1998년 MS가 윈도우 체제를 판매하면서 MS워드 및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 다른 프로그램들까지 한꺼번에 번들 판매(끼워팔기)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당시 법무부는 2000년 MS를 제소하며 기업분할을 요구했다. MS를 운영 체제를 판매하는 기업과 기타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각각 분할하라는 요구였다.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MS는 기업 분할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2002년 벌금을 물고 사업 운영 방식을 개편하는 수준에서 소송을 마무리했다. 빌 게이츠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 일선 후퇴한 것도 그 여파였다.

기업 분할까지는 아니지만 반독점 규제로 산업계의 굵직한 인수합병에도 제동이 걸렸다. AT&T의 T모바일 인수(2011년)와 스프린트의 AT&T 인수(2014년) 모두 반독점법에 발목이 잡혀 무산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 AFP=연합뉴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 빌 게이츠. AFP=연합뉴스

반독점법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됐다. 대표주자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다. 그린스펀은 2014년 쓴 글에서 “셔먼법은 새로운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 기회를 죽이는 법”이라며 “경제적 불합리성과 무지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반독점 규제의 필요성에 대한 미국 내 공감대는 공고하다. 자유 경쟁의 토양을 조성하기 위해 사법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초당적으로 공유하는 가치다. 이달 초 미 하원은 "(구글ㆍ애플ㆍMSㆍ페이스북) 빅테크 업체들이 과거 석유·철도회사처럼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며 449쪽짜리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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