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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전직 비서실장들 “요즘 청와대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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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해 공무원 피살 사태 뒷북 대응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13년 2월 24일 오후 4시, 이명박 대통령(MB)은 중국 국가 주석 특사와 태국 총리를 접견했다. 17대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일정이 끝난 뒤 직원들과 이웃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청와대를 떠났다. 밤 11시 59분 서울 논현동 사저의 전화벨이 울렸다. “대통령님, 국가위기관리실장 안광찬, 보고 드립니다. 전후방 특별한 상황은 없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예, 감사합니다. 방금 국군 통수권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인계되었음을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서재의 시계는 정확히 25일 0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대통령의 통수권은 그렇게 지엄한 것이다. MB의 자서전인 『대통령의 시간(2008~2013)』 에 나오는 내용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대북 비상 대처 #“나라면 전혀 다르게 대응했을 것” #남북한, 사소한 사건도 참혹한 #대규모 무력충돌로 비화될 수 있어 #예민하게 관찰, 선제적 관리해야

문재인 정부의 서해 공무원 피살 대응과정에 대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시간은 너무 일러서도 안 되며, 너무 늦어서도 안 되는, 단 한 번의 단호한 결정을 위한 고심의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맞는 말일까. 청와대 시스템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복수의 역대 청와대 비서실장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모두 비서실장으로 1년 6개월~2년 이상 근무한 인사들이다. 대답은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이번 북한 총살 사태의 처리 과정을 어떻게 보는가
“청와대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일 뿐, 딴 나라가 아니다. 상식선에서 돌아가는 게 기본이다. 청와대에는 NSC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상세하고 정확하게 규정해 놓은 매뉴얼이 있다. 물론 대통령의 개인적 성격에 따라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큰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나온 보도를 보면 이번 대응 과정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내가 비서실장일 때 청와대는 항상 휴전 국가라는 사실을 의식했다. 정전 상태에선 어떤 사소한 도발도 자칫 대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갖고 움직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좀 이상하다. 안보보다 평화와 종전을 강조하는 걸 보면 우리 때와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 같다.”
만약 지금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이번에 비서실장도 심야 NSC 회의에 참석했다고 한다. 내가 그랬다면 곧바로 국정상황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직보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거친 분이어서 보고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실텐데….”
퍼스펙티브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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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가 새벽(오전 1시~2시 30분)에 NSC 긴급장관회의를 연 것을 보면 이번 사태를 중대 사안으로 판단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군에 의한 총살 및 시신 소각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은 첩보 입수 후 10시간 뒤인 23일 오전 8시 30분이었다. 또 남북 정상이 친서를 교환하는 채널이 살아있음에도 정작 우리 국민이 사살될 때까지 북에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촉구한 유엔 총회 기조연설이 나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단편적인 토막 첩보들을 공유해 사실관계를 추론하고 정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또 유엔 기조연설은 “사전녹화라 수정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대응은 MB 때와 비교된다. 당시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2008년 7월 11일)-천안함 피격(2010년 3월 26일)-연평도 포격(2010년 11월 23일) 등 유난히 북한의 특대형 도발들이 잦았다.

금강산 피살 사건은 MB가 국회 시정연설을 하기 직전 첫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진상이 확실히 전해지지 않았고 우울증을 앓던 관광객이 바다에 투신자살했다는 첩보까지 난무했다. 일단 북한과 대화를 주문하는 시정 연설은 그대로 강행했다. 그 후 청와대로 돌아와 ▶동이 터서 육안으로 충분히 식별이 가능한 시간에 벌어졌고 ▶북한은 4시간이 지나서야 현대아산에 통보했으며 ▶주말이라는 이유로 우리 전화통지문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MB는 곧바로 우리 관광객을 모두 귀환시키고 “금강산 관광은 진상이 조사될 때까지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또 보고 지연 관행을 막기 위해 중요한 미확인 첩보는 ‘즉시 보고 후 추가 보고’하도록 원칙을 바꾸었다.

그 후 천안함 피격은 밤 9시 22분 사건 발생과 동시에 첫 보고가 들어왔고, MB는 1시간 반 만에 청와대 지하 벙커에서 긴급 안보장관회의를 주재했다. 또 두 달여 만에 쌍끌이 어선이 북한 어뢰 추진체를 건져 올리자 곧바로 남북 교류협력을 전면 중단하는 5·24 보복 조치를 발표했다. 연평도 포격 때도 MB는 즉시 지하 벙커로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회 답변에 발목이 잡혀 회의에 늦었고, 교전수칙에 따라 연평도에 떨어진 70~80발 만큼만 소극적으로 보복한 것에 분노했다. MB는 열흘 뒤 김 국방장관을 전격 교체하고 민간인이 희생된 만큼 앞으로 4~5배 응징하도록 교전수칙 개정을 지시했다.

이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왜 이렇게 이번 사태에 소극적인지 전직 비서실장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두 가지 대목을 짚었다. 하나는 대통령의 성향이다. 문 대통령이 혹시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사교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꺼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처럼 글자 위주의 서류 보고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 대통령이 북한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바람에 참모들이 보고를 망설였을지 모른다고 짚었다. 문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 직후(2018년 6월 14일)와 하노이 회담 직후(2019년 3월 4일) 등 두 차례만 NSC 전체회의를 열었다. 대통령이 주재하고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까지 참석하는 NSC 전체회의는, 그 후 1년 반 넘게 열리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도, 이번 공무원 피살 사건 때도 NSC 전체회의는 열지 않았다. 대신 안보실장이 주재하는 NSC 상임위로 대체됐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전직 비서실장들은 “돌아보면 박근혜 시절부터 청와대가 뭔가 이상하게 변한 느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탄핵 이후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비선 통치·밀실 정치 실상에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소위 ‘문고리 3인방’이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검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박 대통령께서는 사교적이거나 다른 사람과 교류가 많은 분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를 통해서 말씀을 전달해 달라는 사람도 늘어나고 대통령을 만나거나 통화하기 위해 저희를 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런 말이 생긴 것 같다.”

하지만 이 무미건조한 진술 뒤에 세월호의 비극이 놓여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2014년 4월 16일 김장수 안보실장은 오전 10시쯤 박 대통령에게 두 차례 휴대폰으로 전화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는 안봉근 비서관에게 “대통령에게 보고될 수 있게 조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또 하나의 경로는 신인호 위기관리센터장이 상황병에게 세월호 급보를 관저에 전달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상황병이 7분간 뛰어 들고 간 보고서는 관저 경호관-내실 요원(당시 71세·여)을 거쳐 침실 앞 탁자에 놓였다. 이 서류를 대통령이 읽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안 비서관은 급히 청와대 본관에서 차를 타고 10시 20분쯤 관저에 도착했다. 그는 침실 앞에서 대통령을 수차례 불렀다. 그 소리를 듣고 나온 박 대통령에게 “국가안보실장이 급한 통화를 원한다”고 보고했다. 박 대통령이 “그래요?”라며 김장수 실장에게 전화를 건 시각은 오전 10시 22분. 골든 타임이 지나가 버린 뒤였다.

하지만 전직 비서실장들이 더 놀란 대목은 따로 있다. 검찰 조사에서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A급 보안손님’으로 관저에 들어온 최순실, 그리고 문고리 3인방과 세월호 회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회의에서 대통령의 중앙재해대책본부 방문이 결정됐다. 반면 김기춘 비서실장은 오후 4시 10분 긴급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했지만,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 박 대통령은 제대로 된 실시간 정보에서 스스로 격리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경험 많고 노련한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장수 안보실장 대신, 관저에서 아마추어 비선들과 머리를 맞대고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 셈이다. 탄핵과 몰락의 불길한 징조가 어른거리는 대목이다. 전직 비서실장들은 “비선 통치·밀실 정치의 상징적 단면”이라며 혀를 찼다.

역대 비서실장들에 따르면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부지런하고 적극적이었다. 토론을 즐겼으며 보고 채널도 항상 열어놓았다고 했다. 대통령이 비서관들과 같이 담배도 피우고, 소탈하게 비서관들의 어깨를 툭 치며 “저번에 올린 그 보고서 좋더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전 비서실장들은 “그런 분위기는 대통령과 비서진들이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고 기억했다.

청와대 내부의 소통과 보고는 중요하다. 이번 서해 공무원 피살 사태에서 그 과정이 뒤틀리다 보니 뒤늦게 여당 의원들이 총대를 메고 무리수를 두고 있다. 비극적 사건마저 진영 논리로 다룬다. 희생된 공무원이 월북했다고 몰아가고, 천인공노할 총살과 시신 소각을 ‘코로나 방역’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래서 전직 비서실장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지금 청와대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안보에는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남북 간에는 사소한 사건도 언제든 참혹한 대규모 무력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 다른 사안들과 달리 굉장히 예민하게 다루고 선제적으로 관리·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보가 흔들리고 국민이 불안해한다는 걸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