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2035

답정너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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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사회1팀 기자

박태인 사회1팀 기자

“결국 답을 정해놓은 것 아닙니까”

젊은 판사들이 말했다. 어떤 판사가 특정 연구회 출신이라는 기사를 보며 “법관 비난은 사법부의 독립을 흔드는 것이란 언론들이, 어쩔 땐 판사의 출신을 이리 따져묻는 것이냐”고 물었다. 지난 1심에서 김경수 경남지사를 구속했던 재판장을 비난한 여권을 꾸짖은 언론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동생의 다수 혐의에 무죄를 준 재판장의 소속 연구회는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질문이었다. 사법부의 독립이 중요하다면, 판결을 비판할지언정,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은 다 나쁜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사안마다 조금씩 다른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결국 언론도 예상했던 답과 다른 판결이 나오면, 그 판사를 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뼈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도 ‘이미 답을 정해놓고 너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답정너의 세상’의 조력자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시선203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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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법조를 취재하며 느낀 게 하나 있다. 우리가 답정너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검사는 유죄를 확신하고, 피고인은 무죄를 확신함을 넘어, 검찰 지지자와 피고인의 지지자들은 판결 전 답을 내리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바쁘다. 그 사이에서 재판 결과에 따라 신상이 털리는 판사들이 중심을 잡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양쪽 진영의 사람들은 SNS로 매일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른다. 조국 전 장관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 중 진중권 전 교수의 글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알고리즘상 그의 글이 아예 안 뜰지도 모르겠다. 지난달 미국 NBC의 대선 여론조사에선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가 6%에 불과했다.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열리기 전이었음에도 94%의 사람들은 마음을 정해놓은 ‘답정너 유권자’란 뜻이었다. 그 결과를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황당한 발언들도 이해가 갔다. 정치인은 내 지지자만 챙기고, 그의 지지자들은 나만을 위한 정치인에 열광하는 세상. 그런 답정너의 세상은 미국과 한국 모두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질문을 했던 판사에게 “이런 답정너의 세상에선 어떻게 살아가면 좋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솔직히 숙이거나, 무시하고 싶지, 소통해보겠단 의지가 잘 들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어떤 진정성을 담아도 돌아오는 것은 진영논리뿐 아니냐고 했다.

답정너의 세상이 끔찍한 건, 모두가 정답이라 생각한 그 답이 오답일 가능성 때문이다. 그런 세상을 언론이 바꾸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 분도 많겠다. “기레기인 너부터 바꾸라”는 성난 독자도 있을 것이다. 나도 더 노력하겠다. 그러니 이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음속 정답을 조금 내려놓고 사는 것은 어떨까.

박태인 사회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