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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천재는 아니었지만 우승 천재였던 ‘모비스의 심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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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눈물을 훔치는 양동근. [연합뉴스]

눈물을 훔치는 양동근. [연합뉴스]

“울산행 기차에서 박지훈 등 옛 동료들을 만났는데 ‘대박’ 신기했어요. 사인받을 뻔했어요.”

양동근 6번 영구 결번·은퇴식 #울산 홈 경기서 무관중으로 진행 #코로나19로 미국 연수 지각 출발

서울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울산에 왔다는 양동근(39)이 11일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날 은퇴식을 위해 서울 집에서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원주 DB 전이 열린 울산동천체육관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경기 용인에 숙소가 있는 현대모비스 선수단이 동탄역에서 SRT에 탑승한 것. 우연히 만나 함께 이동했다.

양동근은 4월 은퇴를 발표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은퇴식은 7개월 만에 열렸다. 양동근은 현대모비스에서 2004년부터 17시즌을 뛰었다. 그 기간 팀을 6차례 우승으로 이끈 ‘모비스 심장’이었다. 무관중 경기 중이라 팬 없이 은퇴식을 했다. 대신 현대모비스 선수단이 유니폼에 ‘양동근’ 이름을 달고 뛰었다. 구단이 프로농구연맹(KBL)의 양해를 구했다. 양동근은 3쿼터에 TV 객원 해설위원으로 나섰다. 그는 “은퇴한 지 너무 오래됐다”고 너스레를 떤 뒤 “젊은 선수와 경쟁이 안된다고 생각해 은퇴했다. 할 만큼 했다. 은퇴식을 팬 앞에서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동료들이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뛰어준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 [사진 KBL]

그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 [사진 KBL]

경기 후 양동근의 등 번호 ‘6번’의 영구결번식이 열렸다. 현대모비스(전신인 기아 포함)에서는 김유택, 우지원에 이어 세 번째 영구결번이다. 허재의 경우 2004년 은퇴경기도 열렸지만, 양동근은 은퇴식만 했다. 양동근은 “제가 은퇴경기까지 치를 만한 선수는 아니지 않나”라고 특유의 겸손함을 보였다. 적장이었던 이상범 DB 감독은 “한국에 농구 잘하는 기라성 같은 선수는 많았다. 하지만 양동근처럼 한 팀에서 6번이나 우승을 이끈 선수는 없었다. 김주성(DB 코치)도 대단한 선수였지만, 양동근이 더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용산고 시절 키 1m68㎝(현재1m81㎝)의 양동근은 이상민이나 김승현과 달리 가드로서 천부적인 재능은 부족했다. 왼손 엄지를 쓰던 슛 자세를 프로에 와서야 교정했다. 고시생처럼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얘기를 받아 적어 방 벽면에 덕지덕지 붙이고 암기했다. 2005년 크리스 윌리엄스와 함께 뛰며 농구에 눈을 떴다. 윌리엄스는 2017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양동근은 “오늘 같은 날, 영상 축하라도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유 감독은 “코로나 여파로 미국 연수를 못 갔는데, 이제라도 가게 돼 다행이다. 훌륭한 지도자가 될지 모르겠으나, 성실하니까 반은 깔고 들어갈 것”이라고 칭찬했다.

은퇴 후 7㎏가 찐 양동근은 아들 진서(11), 딸 지원(9), 부인, 부모님과 함께 왔다. 그는 “딸이 골프를 배우기 시작해, 나도 배운다. 20일에 미국 워싱턴DC로 간다. 영어 공부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등 번호가 6번이라 6번 우승하고 은퇴한 거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그럴 줄 알았으면 10번 달았겠죠. 16번이나 17번 달 걸 그랬어요”라며 웃었다.

울산=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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