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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핫스팟 된 '공포의 백악관'…직원들 목숨걸고 일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느슨한 방역 지침이 결국 도마 위에 올랐다.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사·청소부 등 상주 직원들 불안감 높아 #확진자 속출에도 백악관은 직원 건강 '나 몰라라' #전 백악관 직원들 “상주 직원들 목숨 걸고 일해”

일각에선 백악관이 내부 직원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백악관 책임론’까지 불거졌다. 특히 24시간 상주하는 집사·요리사·청소 관리사 등이 속수무책으로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잠시 밖으로 차를 타고 나와 지지자들 앞을 지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던 중 잠시 밖으로 차를 타고 나와 지지자들 앞을 지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백악관 내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하자 상주 직원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이 외부에서 바이러스를 옮겨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백악관 집무실 직원들이 평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백악관에서 별다른 방역 지침도 없는데 우리의 건강은 누가 책임지냐”고 불안감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 중 조기 퇴원해 백악관으로 돌아가면서 그 불안감은 더 커졌다.

이들이 우려하는 건 업무 특성상 백악관을 떠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백악관은 집이자 일터다.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백악관을 떠날 수 없다. 그렇다고 당장 일을 관둘 수도 없다.

WP에 따르면 90여 명의 상주 직원 상당수가 60대 이상의 흑인과 라티노 등 소수 민족으로, 사회 취약계층과 코로나19 고위험군에 속한다. 이 가운데는 백악관 업무를 가업으로 물려받아 함부로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또 집사와 청소관리자는 바이러스에 노출될 확률도 높다. 집사는 외부 손님을 맞이하고 안내하면서, 청소 관리자는 백악관 곳곳의 오염된 공간을 청소하면서 감염될 수 있다.

5일 백악관 언론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방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5일 백악관 언론 브리핑룸에서 코로나19 방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주 직원들은 스스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로라 부시의 비서실장이었던 아니타 맥브라이드는 “백악관을 위해 일하면서도 보호받지 못한 상주 직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스크를 쓰는 일밖에 없다”면서 “이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백악관 상주 직원들의 걱정은 날로 늘고 있지만, 정작 백악관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백악관은 아직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며 방역을 강화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강제가 아닌 권고 수준이다 보니 백악관 내 마스크 착용자는 극소수다.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백악관에서 수석 안내인을 지낸 크리스토퍼 에머리는 지난달 26일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후보자 지명식 현장에서 마스크를 쓴 백악관 직원은 상주 직원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확진 판정을 받은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조차 지난 1일 마스크 없이 기자들과 만났다.

게다가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확진 사실을 알고도 제때 알리지 않았다. CNN에 따르면 백악관 상주 직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었다. 행정직 직원들조차 사흘 뒤에 이메일로 재택근무를 권고받았다.

지난 2일 백악관 대변인 케일리 매커내니가 TV 인터뷰를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매커내니는 5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지난 2일 백악관 대변인 케일리 매커내니가 TV 인터뷰를 위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매커내니는 5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AFP=연합뉴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느슨한 방역 지침에 대한 백악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전 백악관 직원들은 트럼프 행정부만큼 상주 직원을 위험에 빠트린 행정부는 없다고 지적했다.

영화 ‘버틀러’의 실제 주인공으로 34년간 백악관 집사로 일한 유진 앨런의 아들 찰스 앨런은 “만약 아버지가 아직도 백악관에서 일하고 있다면 난 당장 그만두라고 애원했을 것”이라며 백악관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또 미셸 오바마의 비서였던 디샤 다이어는 “상주 직원들은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상주 직원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개했다.

그레고리 믹스 민주당 하원의원(뉴욕주)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해 묵묵히 애쓰는 사람들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주드 디어 백악관 대변인은 “백악관은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CDC 지침에 따라 방역 계획과 절차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스테파니 그리셤 대변인도 “백악관 의료과와의 협의를 통해 상주 직원의 건강을 위한 예방 조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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