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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훼손 부정한 北 "무슨 증거로 '만행'이란 표현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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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남북 정상간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남북 정상간 친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47)씨 사살 사건과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 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왔다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밝혔다. 북한은 이날 오전 이런 내용을 담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로 통지문을 보내왔고, 서 실장은 통지문 전문을 공개했다.

북측은 통지문에서 자신들이 조사한 사살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통지문에 따르면, 북한군은 지난 22일 저녁 부업선(군용과 어업용을 겸하는 배)으로부터 “정체불명의 남자 1명을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물에 떠 있던 이씨에게 80m 가까이 접근해 신분확인을 요구했다. 이씨는 한두 번 “대한민국”과 이름을 얼버무리고, 그다음부터는 답을 하지 않았다고 북측은 밝혔다.

북한군이 더 가까이 다가가 두 발의 공탄(空彈)을 쏘자, 이씨는 놀라서 도주할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북측은 “해상경계근무 규정이 승인한 행동준칙에 따라 10여 발의 총탄으로 불법 침입자(이씨)를 향해 사격했다”고 밝혔다. 북한군은 사격 후에 10여m까지 접근해 수색했다. 하지만 이씨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가 붙잡고 떠 있던 부유물과 많은 양의 혈흔만 발견됐다.

북측은 “부유물은 국가비상방역 규정에 따라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밝혔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이 이씨를 사살한 뒤 불태웠다고 전날 밝혔지만, 북측은 부유물만 불태운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일부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조사와 파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수부 공무원 사살 및 시신훼손 사건 상충되는 남·북 입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해수부 공무원 사살 및 시신훼손 사건 상충되는 남·북 입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북측은 통지문에서 “귀측(남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불법 침입자 단속과 단속 과정 해명에 대한 요구도 없이 일방적인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등과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깊은 표현들을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전날 “북한의 만행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다만 북측은 “우리 지도부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고 평했다”며 “우리 측은 북남 사이 관계에 분명 재미없는 작용을 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하여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북측은 “미안하다”는 표현을 통지문에서 두 차례 사용했다.

북측은 “(북한 지도부는)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의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욱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대책을 강구할 데 대하여 거듭 강조했다”고 밝혔다. 서훈 실장은 ‘최근 쌓은 남북 간 신뢰’와 관련,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에 친서를 주고받은 사실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 실장은 통지문 관련 브리핑 2시간 뒤인 오후 4시 다시 브리핑을 하고 문 대통령의 지시라며 남북 정상 간 오간 친서 전문을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에서 총격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우리 측에 공식 사과한 25일 연평도 인근 북한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조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된 공무원이 북한에서 총격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우리 측에 공식 사과한 25일 연평도 인근 북한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조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 실장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친서에서 김 위원장이 재난 현장을 찾은 사실을 언급하며 “국무위원장님의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람의 목숨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며 “우리 8000만 동포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도전과 난관 속에서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장 근본”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12일 보내온 답신에서 코로나19 재확산과 태풍 피해를 거론하며 “대통령께서 얼마나 힘드실지, 어떤 중압을 받고 계실지, 얼마나 이 시련을 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계실지, 누구보다 잘 알 것만 같다”고 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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