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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지 이탈했다 영창 간 조리병의 신청에…“軍 영창제도 위헌”

중앙일보

입력

선임병이 후임병 10명을 수개월 동안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군이 조사에 나섰다. 군은 선임병의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절차에 따라 징계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

선임병이 후임병 10명을 수개월 동안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군이 조사에 나섰다. 군은 선임병의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절차에 따라 징계할 방침이다. [연합뉴스] `

헌법재판소가 24일 병에 대한 징계처분으로 일정 기간 구금 장소에 감금하는 영창처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영창제도 대신 군기 교육을 하는 내용의 군인사법 개정안이 지난 8월부터 시행되며 영창은 사라졌지만, 2005년부터 제기된 영창제도 위헌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건의 시작은 2016년 해군에서 복무 중이던 조리병이었다. 그는 근무지 이탈을 이유로 영창 15일의 징계처분을 받자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병에 대한 징계처분은 강등, 영창, 휴가 제한 및 근신으로 구분한다. 영창은 부대나 함정 내의 영창, 그 밖의 구금장소에 감금하는 것을 말하며 그 기간은 15일 이내로 한다”는 내용의 구 군인사법이 위헌인지 판단해 달라고 광주고등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헌법재판소가 해당 내용을 심리하게 됐다.

헌재가 영창에 대해 판단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헌재는 전투경찰대의 영창 처분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당시에도 합헌은 4명, 반대의견이 5명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이 더 많았지만 위헌결정 정족수인 6명에는 못 미쳤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7:2로 위헌 결정한 헌재

이번에는 7명의 재판관이 해당 법조항의 영창 부분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법 제12조는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영창처분은 복무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불이익 외에도 외부로부터 고립된 장소에 감금돼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게 된다. 헌재는 “중한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전투력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비합리적인 병영 내 문화 개선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영창제도보다 자유를 덜 제한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비위행위를 막을 수 있는 징계수단을 찾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헌재 역시 병의 복무 기강을 엄정히 함으로써 전투력을 높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공익이라고 인정한다. 다만 “이로 인해 제한되는 병사의 사익이 공익보다 결코 가볍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영장주의에도 위배” 보충의견 낸 4명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여기서 더 나아가 영창제도는 영장주의에도 위배된다는 보충 의견을 냈다. 헌법 제12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이 영장주의다. 영창처분 역시 인신 구금이라는 기본권에 중대한 침해를 가져오는 처벌임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판단 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2명의 반대 의견 “군의 전투력 유지는 중요”

반면 이은애, 이종석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영창제도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했다. 영장주의는 형사 절차와 관련된 강제처분에 한해 적용해야지, 병에 대한 징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두 재판관은 “영창이 신체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한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병의 비행을 방관할 경우 자칫 중대한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징계절차를 통한 인신 구금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 북한과의 6‧25전쟁 이후 현재까지 휴전상태인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까지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군사적 위기 상황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데, 군의 전투력을 유지하기 위해 병의 복무 기강을 엄정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군인권센터 “국가, 피해자 회복 조치 취해야”

영창제도 폐지를 주장해왔던 군인권센터 등 단체들은 “헌재의 위헌 결정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단체들은 “건국 이래 지속한 영창 제도의 위헌성 논란이 사법적으로 위헌이라고 완전히 결론지어졌다”며 “다만 늦은 결정으로 인해 구제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다수 양산되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한 채 위헌적인 영창제도를 지속해서 운영해온 것에 대한 사과 등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즉각 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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