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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학대한 계모, 9살 아이는 숨 멎을때까지 "엄마~" 외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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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방에 갇혀 있다 숨진 9살 아이는 숨이 멎을 때까지 “엄마~”라고 외쳤다. 아이가 부른 엄마는 자신을 가방에 감금하고 평소에도 여러 차례 학대한 계모였다.

법원, 여행가방 살해 계모에 징역 22년 선고 #숨진 아이 '경찰관이 꿈' 설명하면서 울먹여 #사건 목격한 친자녀 겪을 '트라우마'도 우려

지난 6월 10일 경찰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원안)를 검찰로 송치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지난 6월 10일 경찰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계모(원안)를 검찰로 송치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계모는 자신을 ‘엄마’라고 연신 부르던 아이를 끝내 외면했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호소하는 아이를 놓고 3시간 넘게 외출하고 돌아온 뒤에도 지인과 40분 넘게 통화했다. 아이는 결국 가방에 갇힌 지 7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1부(부장 채대원)는 16일 살인 및 이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A씨(41·여)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달 1일 천안시 한 아파트에서 B군(9)을 여행가방에 7시간가량 감금,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40여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선고 이유를 자세하게 밝혔다. 숨진 B군(9살)이 겪었던 학대와 피해 내용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일련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고 피고인 역시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피고인의 살인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말했다.

 피고인 A씨 측이 “훈육 차원에서 (아이를) 가방에 감금한 것이지 계획적인 살인 의도가 없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살인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범행 동기와 도구, 반복성 등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대법원의 판례”라고 반박했다.

여행가방에 감금돼 의식불명에 빠졌던 9살 아이가 지난 6월 1일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구급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계모(오른쪽 노란색 옷). [연합뉴스]

여행가방에 감금돼 의식불명에 빠졌던 9살 아이가 지난 6월 1일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구급대를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계모(오른쪽 노란색 옷). [연합뉴스]

 양형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재판장은 여러 차례 크게 숨을 쉬었다. 울음을 참느라 목이 막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지 못해서였다. 채대원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진정으로 참회하고 후회하는지 의심이 든다. 피해자는 약한 어린아이였다”며 길게 침묵했다.

 이어 피해자 유족(친모 등)과 학교 선생님, 이웃 주민들의 진술을 설명하면서도 울먹임과 침묵을 반복했다. “경찰관이 꿈인 아이가…”라며 채 부장판사가 말을 잇지 못하지 결국 방청석에서도 흐느낌이 쏟아졌다.

 피고인이 수사기관(경찰·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아이를 가방에 가둔 것과 119 신고하는 등 의붓아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숨진 B군이 가방에 들어간 것도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이뤄진 행동이라고 진술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친자녀들에게 이런 진술을 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붓아들을 숨지게 한 계모가 6월 3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법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의붓아들을 숨지게 한 계모가 6월 3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법 천안지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이내 거짓 진술로 파악됐다. 사건 당일 아이를 체벌하기 위해 가방에 감금했고, 자신의 친자녀들과 함께 가방에 올라가 뛰거나 헤어드라이어로 뜨거운 바람을 가방 안으로 불어넣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외출할 때 아이들에게 (B군을) 가방에서 빼주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도 사실과 달랐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가족의 물건에 손을 대 훈육 차원에서 체벌했다”는 피고인 측 주장에 대해서는 “(피해자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까지 인정하고 거짓말하는 아이로 낙인이 찍혔다”며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유족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친자녀가 겪은 과정과 앞으로 겪어야 할 고통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과정을 목격하고 가담한 두 자녀의 트라우마가 적지 않은 점도 피고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판시했다.

9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함 혐의로 기소된 게모에게 법원이 16일 징역 22연을 선고한 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9살 의붓아들을 여행가방에 감금해 숨지게 함 혐의로 기소된 게모에게 법원이 16일 징역 22연을 선고한 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아울러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피해자에게 일말의 연민과 측은지심도 없었다”며 “피해자가 가방에 갇혀 ‘숨~ 숨~’이라며 숨을 쉬기 어렵다고 호소하며 겪었을 고통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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