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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호의 미래를 묻다

사용 동의한 내 개인 정보, 정말 안전하게 쓰이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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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데이터 거래와 보안

인호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인호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가즈아, 천슬라에서 만슬라로!’

정보 위·변조 힘든 블록체인과 #데이터 남용 막는 스마트 계약 #정보 유출 등 불안감 가라앉혀 #데이터 경제 시대 이끌 두 기술

해외 주식에 투자하던 ‘서학(西學) 개미’들은 올 초 ‘천슬라’를 외쳤다. 주가가 더 올라 1000달러(액면분할 전 주가 기준)까지 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최근 1년 새 660%나 오르면서 테슬라는 이제 천슬라를 넘어 ‘만슬라’로 향해 가고 있다. 이렇게 오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한 가지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데이터다.

구글 웨이모는 일찌감치 테슬라에 앞서 자율주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데이터양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웨이모는 일반 도로에서 총 2000만 마일(3200만㎞)을 달리며 데이터를 획득한 반면, 테슬라는 약 98만 대에서 이미 30억 마일(48억㎞·지구 둘레를 12만 바퀴 돌 거리) 치의 주행 데이터를 모아 인공지능(AI)에 학습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공지능의 품질은 학습한 데이터양에 어느 정도 비례하므로, 자율주행 경쟁에서는 테슬라가 유리할 것이 틀림없다. 만약 테슬라가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제일 먼저 완성해 상용화한다면? 그것은 육상 물류와 모빌리티 서비스를 테슬라가 다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독점 운영체계 플랫폼 회사들이 스마트폰과 앱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데이터 활용과 개인정보 보호의 충돌

툭하면 QR코드를 찍어야 하는 요즘, 정보 보안에 대한 불안감이 높다. ‘내 정보가 새는 것은 아닐까. 제때 삭제는 하는 것일까.’ 블록체인은 이런 불안을 없애줄 수 있는 기술이다. [연합뉴스]

툭하면 QR코드를 찍어야 하는 요즘, 정보 보안에 대한 불안감이 높다. ‘내 정보가 새는 것은 아닐까. 제때 삭제는 하는 것일까.’ 블록체인은 이런 불안을 없애줄 수 있는 기술이다. [연합뉴스]

데이터 확보가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세상이다. 세계는 바야흐로 제조업 중심 산업 경제 시대에서 인공지능 중심의 데이터 경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가 데이터 창출 시대로 넘어가는 데는 큰 걸림돌이 있다. 데이터 활용의 가치가 개인정보 보호와 충돌하고 있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보자. 뷔페식당 같은 곳은 본인 인증을 받은 QR코드를 찍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가는 곳마다 나의 족적을 디지털로 모두 남겨야 한다. 이 데이터를 누가 수집해 어디에 활용하는 것일까. 정말 폐기처분은 하는 걸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로 인해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도 겁난다. 한때 일부는 종교 때문에, 한때는 성 소수자란 사실이 주변에 알려져 배척받을까 두려워했어야 했다. 외신에서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면서 신뢰성 있게 개인의 데이터 주권을 지켜 줄 수는 없을까. 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대체 블록체인이 뭐길래? 일단 어려운 설명부터 시작하자. 블록체인이란 데이터나 ‘신뢰 자산(디지털 화폐나 주식 거래 원장, 부동산 계약서 등)’을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위·변조하기 어렵게 한 차세대 신뢰 컴퓨팅 기술이다. 음, 어렵긴 하다. 그럼 쉬운 비유를 들어 보자.

동네에서 두 사람이 돈을 꿔 주고 받을 때, 보통 차용증을 쓴다. 하지만 한 쪽이(주로 돈을 꾼 사람이) “차용증은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중앙화 된 신뢰 기관이다. 차용증을 보관하고 인증하는 시스템이다. 즉, 돈을 빌려줄 때 믿을 수 있는 동네 이장 어른에게도 차용증 복사본을 주는 식이다. 나중에 “차용증이 위조됐다”는 주장이 나오면, 이장이 가진 차용증과 대조해 보면 된다. 대가로 이장에게는 소정의 수수료를 준다. 이것이 지금의 공증 시스템이다.

그런데 만약 돈을 꾼 사람이 이장에게 돈을 주면서 이장이 보관한 차용증까지 위조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까지도 없애는 방법이 있다. 동네 주민 각각의 컴퓨터에 차용증을 복사해 암호를 걸어 저장해 놓는 것이다. 그래 놓고서 문제가 생기면 동네 컴퓨터의 차용증을 모두 대조해 위·변조 여부를 판단한다. 이런 게 바로 블록체인 시스템이다. 누군가 차용증을 위조하려면 주민 모두의 집에 몰래 들어가 컴퓨터 속의 암호화된 차용증을 모두 조작해야 한다. 사실상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이장 같은 ‘중앙 신뢰 기관’이 없는 데도 그렇다. 그래서 블록체인은 ‘절대 위·변조되면 안 되는 정보를 신뢰성 있게 보관·관리해주는, 탈 중앙화된 신뢰 머신’이다.

하나만 더. ‘스마트 계약’이란 게 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계약에 걸린 조건이 자동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세뱃돈을 디지털 화폐로 주면서 PC방에서는 절대 쓸 수 없도록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세뱃돈 받는 사람이 약속하는 게 아니라, 디지털 화폐에 그런 기능을 심어 놓는 것이다. 스마트 계약이 상용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몰래 PC방에서 결제하려 하면 ‘삑’ 소리와 함께 ‘사용 불가’ 메시지가 뜰지도 모르겠다.

블록체인과 스마트 계약을 결합하면, 데이터 주권을 보장하면서도 데이터를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다. 데이터 제공자는 보안이 든든한 블록체인 데이터 거래 플랫폼에 자신의 금융·건강·소비 정보 등을 올려놓는다. ‘스마트 계약’ 조건도 걸어 놓는다. 데이터 이용 대가는 얼마이고, 사용처는 이런저런 곳으로만 제한하고, 사용 기간은 언제까지라는 것 등이다. 조건이 맞으면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측이 제공자에게 보상을 주고 데이터를 가져가 쓴다. 엉뚱한 데 사용하려 하면 스마트 계약이 훼방을 놓는다. 그래서 데이터 오·남용 문제가 사라진다. 사용 기간이 지나면 스마트 계약이 작동해 데이터는 저절로 불용처리 된다. “혹시나…”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데이터 거래 자체가 스마트 계약에 따라 자동으로 이뤄지므로 매번 데이터 제공 동의 여부를 묻고 답하는 귀찮은 일도 없다.

디지털 뉴딜에도 블록체인은 필수

우리는 데이터가 자산이 되는 ‘데이터 경제’로 가는 길목에 있다.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라는 가치도 매우 중요하다. 인권 보호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라는 원칙을 엄격하게만 해석해 데이터 수집과 이용을 무조건 막으면 새 디지털 서비스를 창출하기 힘들다. 비공개 데이터 거래 시장에서 불법 데이터 거래가 횡행할 위험도 있다. 오히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현명한 규제 가이드라인 안에서 움직이는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낫다. 그래서 결국 블록체인이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에서도 블록체인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데이터 활용과 보호가 동시에 이뤄져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을 달성할 수 있다.

데이터는 기본소득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2025년 ○월 ○일.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단다. 검진 센터에 가서 설명을 들었다. 몇 년 전과는 설명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냥 검사 결과와 이에 따른 건강 지키기 요령만 알려주는 게 아니다. 검진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내 건강과 생활 관련 데이터까지 모두 확보해 분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내려받아 설치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다.

이 앱은 내가 먹은 식사의 종류와 양, 식사 시간, 걸음 수 같은 활동량, 혈압·혈당의 변화까지 세세한 데이터를 파악한다. 의사와 영양사는 이런 종합 정보를 분석해 내게 상담을 해 줬다. 식단 추천은 물론, “혈당 수치가 이러니 하루 평균 8000걸음을 걷도록 노력하면서 혈당을 계속 체크하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내 건강·생활습관·검진 데이터는 새벽 배송 업체들도 받아본다. 고지혈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염분과 당분이 적은 야채 위주의 아침 식사를 집에 보내 준다. 새벽 배송 업체들은 이렇게 내 데이터를 활용해 사업하는 대가로 소정의 코인을 내게 지급한다. 여기저기서 쓸 수 있는, 일종의 디지털 화폐다.

또 다른 앱 알림이 떴다. 음식점 추천 앱이다. 역시 내 건강·식생활 데이터를 바탕으로 했다. 여기서도 코인이 나온다. 아마 음식점에서 마케팅 대가를 받고, 그 수익의 일부를 내게 나눠주는 것 같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건강을 위해 산책했다. 관련 앱이 걷는 속도까지 잡아 준다. 빠른 속도로 35분 동안 4000걸음을 걸었다. 이 정보는 내가 든 생명보험회사도 받는다. 걷기가 쌓이면 생명보험사에서 코인이 나온다. 그만큼 보험금 지급 확률이 떨어졌다나? 일종의 배당을 받은 셈이다.’

곧 현실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다. 개인의 데이터는 각종 사업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혜택을 보는 셈이다. 이렇게 얻는 혜택·수익을 데이터 제공자와 나누는 개념이 이른바 ‘데이터 배당’이다. 개인 데이터를 이용해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킨다면 ‘교재비’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개인 데이터는 누구나 갖고 있다. 살면서 계속 생산한다. 그렇다면 ‘데이터 배당’이 기본소득을 해결하는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호 교수

고려대 블록체인연구소장.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자문위원이다. 한국블록체인학회 초대 학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누가 부의 미래를 주도하는가』 등이 있다.

인호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