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뿔도마뱀, 죽은 척해 위기 모면…대담한 전략의 승리

중앙선데이

입력 2020.09.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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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호 16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일러스트=전유리 jeon.yuri1@joins.com

제왕뿔도마뱀이라는 괜찮은 이름을 가진 녀석들이 있다. 북미 애리조나 사막에 사는데, 머리 위에 솟은 뿔이 마치 왕관처럼 생겨 얻은 이름이다. 하지만 모양만 그럴 뿐 여느 도마뱀처럼 덩치가 작다 보니 제왕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이 지역에 사는 뱀들이 녀석들을 ‘일용할 양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뱀·여우·호랑이 등 포식자들
자신 힘으로 쟁취한 것만 먹어
도마뱀, 상대 특성 파악해 행동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힘들 때
우연 기대 말고 한번 더 힘내야

하지만 만만히 당하지는 않는다. 특히 알을 지키는 암컷들이 그런데, 녀석들은 선제 공격까지 한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인 까닭이다. 그러다 여의치 않다 싶으면 두 번째 카드를 뽑아 든다. 몸집을 있는 대로 부풀리는 것이다. 큰 덩치는 대체로 큰 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카드는 예상을 뒤집는다. 하얀 배를 그대로 드러낸 채 벌렁 누워 버린다. 기절한 듯 숨도 쉬지 않는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 삶을 포기한 걸까?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방금 전까지 끈질기게 달려들던 뱀이 거저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가만히 지켜보다 조용히 사라진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뱀은 자신이 직접 사냥한 것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 죽어 있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죽은 걸 잘못 먹었다가 호되게 당했던 적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도마뱀들이 벌렁 누워 죽은 척하는 것도 이런 특성을 간파한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한입에 꿀꺽 삼켜질 수 있지만 상대를 알기에 용감하게 감행하는 대담한 전략이다.

도마뱀들의 대응도 놀랍지만 뱀들의 신중함도 참 대단하다 싶다. 사실 뱀들만이 아니라 자연의 많은 사냥꾼도 자신이 사냥하지 않은, 죽어 있는 고기를 함부로 취하지 않는다. 눈치 빠른 여우는 물론이고 최고 포식자인 호랑이와 늑대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잘 알아서인지 주변을 오랫동안 살피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한입 물어보고 한참 있다 다시 한입 무는 식으로 우연하게 자기들 앞에 나타난 게 혹시 행운을 가장한 불행이 아닌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확인한다. 뭔가 꺼림칙하다 싶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곧바로 자리를 뜬다. 사냥을 하든 빼앗든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 만을 먹는다. 삶을 우연에 기대지 않는다.

죽은 척하는 전략이 드물지 않은 게 이래서다. 미국인들이 미식축구에서 쓰는 ‘플레이 어포섬(Play opossum·죽은 척하다)’에 나오는 opossum도 그렇다. opossum은 미국 남동부 지역에 사는 작은 주머니쥐인데 이 녀석도 막다른 상황에 처하면 죽은 척한다. 태클을 당해 쓰러진 선수가 일부러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알다시피 독일 나치 치하의 유대인들은 강제수용소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모든 게 힘들었지만 가장 힘든 건 그 생활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도 마냥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희망을 품기도 했다.

수용소에 들어오기 전 꽤 유명한 음악가였던 어떤 사람은 “꿈에서 누군가 1945년 3월 30일에 고통이 끝날 것이라고 알려줬다”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이 왔음에도 희망이 오지 않자, 하루 전부터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직접적인 원인은 발진티푸스였지만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었다.

그만이 아니었다. 1944년 크리스마스에서 이듬해 새해까지 1주일여 동안 많은 사람이 그처럼 세상을 떠났다. 사망률이 갑자기 높아졌을 정도로 말이다. ‘크리스마스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출처도 없는 막연한 소문을 믿었다가 실현되지 않자 살아갈 힘을 잃었던 것이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닌 가짜 희망에 기댄 결과였다. 이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나중에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이 책에서 근거 없는 낙관이나 희망만큼 위험한 건 없다고 한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기대나 소망을 희망이라고 믿을수록 더 큰 절망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희망은 우리 인간만이 가진 대단한 능력이다. 어느 생명체보다 뇌를 발달시킨 덕분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냥감을 쫓아갈 수 있고, 저 너머에 있는 희망을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우연에서 기회를 찾아내기도 하지만 우연을 기대하고 희망하다 스스로를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가짜 희망에 속는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빌보드 ‘핫(HOT) 100 차트’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의 제이홉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래를 만들고 춤을 추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가 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더는 앞으로 나가기 어려워질 때, ‘딱 한 번만 더’라는 생각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그렇다. 희망이란 우연을 기대하고 그것을 희망으로 삼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힘을 내는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희망이다. 프랭클도 그랬다. “나약해지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한다고. 여러모로 힘든 지금이 그럴 때가 아닌가 싶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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