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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영끌말고 청약하라더니…이달 서울 아파트 분양 '0'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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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4아트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뉴스1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4아트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모습. 뉴스1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이 때아닌 빙하기에 빠졌다. 공급이 바짝 말라서다. 지난 7월29일 시행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영향이 크다. 쏟아지는 규제에도 ‘로또 아파트’를 좇는 수요가 몰리며 연초부터 이어진 청약 열풍도 강제로 사그라들게 됐다.

부동산리서치업체인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서울의 새 아파트 분양물량은 ‘0가구’다. 지난 3일 청약을 받은 양천구 신월동에서 신목동 파라곤(신월4구역) 153가구가 이번 달 유일한 물량이다.

연말까지 사정은 비슷하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달 3000여 가구가 분양 예정이다. 하지만 분양 일정이 확정된 곳은 아직 없다. 11월(1500가구)과 12월(1900가구) 분양 일정도 묘연하다. 분양예정단지가 모두 상한제 직격탄을 맞은 재개발ㆍ재건축 단지라서다. 때문에 업계에선 연말까지 서울 새 아파트 분양물량이 1000가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웅식 리얼투데이 분양담당은 “상한제 시행으로 후분양을 고민하며 분양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이라며 “다들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분양 일정을 내년으로 미루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연간 분양물량이 가장 많은 시기에 서울 분양시장이 ‘시계 제로’에 빠진 것은 상한제 영향이 크다. 일반 분양가에 제약이 생기면서 재개발ㆍ재건축 단지가 잇달아 분양을 미루고 있어서다.  집을 지을 빈 땅이 거의 없는 서울에서 재개발ㆍ재건축은 새 아파트 공급의 주요 수단이다. 그런데 이 물길이 막힌 것이다.

관련 법까지 개정하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전에도 서울 아파트 분양가에는 제약이 있었다. 정부가 고분양가 사업장에 분양보증 처리기준을 적용해 분양가를 규제했다. 주변 시세의 100%를 넘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 보증을 해주지 않았다.

상한제 시행으로 제약은 더 커졌다. 국토교통부는 상한제 적용 분양가를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으로 추정한다. 보증공사의 기준보다 낮다.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는 땅값(택지비)에 국토부가 매년 2회 발표하는 ‘기본형 건축비’(올 3월 기준 3.3㎡당 633만6000원)와 가산비를 더해서 결정된다.

재개발ㆍ재건축 조합 입장에선 원하는 수준으로 일반분양할 수 없다면 분양을 연기하거나 사업 자체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반 분양가가 낮아질수록 재개발ㆍ재건축 조합원이 내야 하는 자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 둔촌주공은 보증공사와 분양가 줄다리기 끝에 보증공사가 제안한 분양가로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신청까지 했다. 하지만 조합원의 반발로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 임원이 모두 해임됐고 사업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조합은 3.3㎡당 3550만원에 분양하려 했지만, 보증공사는 2978만원을 제안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보증공사 제안대로라면 조합원당 평균 1억2880만원 부담이 늘어난다”며 “20년을 기다렸는데 청약 당첨자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 새집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한제로 인한 공급 절벽은 처음이 아니다. 상한제가 시행됐던 2007년에도 서울 아파트 분양시장은 한동안 공급 절벽에 빠졌다. 2007년 서울 아파트 공급(인ㆍ허가 기준)은 5만 가구였지만, 상한제 시행 이후인 2008년(2만1900가구)과 2009년(2만6600가구)에는 공급이 반 토막 났다.

30대, 사실상 서울 아파트 분양 못 받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는 주택 가격이나 분양 가격이 지나치게 올라 이상 과열 징후가 있는 지역에 적용할 수 있는 제도다. 그동안은 까다로운 기준 탓에 적용이 쉽지 않았는데 정부가 지난해 8월 상한제 지역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했다.

예컨대 상한제 적용 필수요건은 ‘직전 3개월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에서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으로 바뀌었다. 현재 서울 대부분 지역(18개 구 309개 동)과 경기도 과천ㆍ광명ㆍ하남시 일부 지역(13개동)이 해당한다.

분양 시장이 꽁꽁 얼어붙자 청약 대기 수요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해 집을 사는 30대에게 “청약을 기다리라”고 말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영끌해서 집을 사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앞으로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생각할 때를 기다렸다가 합리적 가격에 분양받는 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저희는 조금 더 (매수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관의 이런 인식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다. 서울에 청약할 수 있는 물량 자체가 없는 데다, 30대는 사실상 당첨이 어렵다. 국내 청약제도는 무주택기간ㆍ청약통장 가입 기간ㆍ부양가족 수를 따진다. 지난 7~8월 서울 새 아파트 당첨자의 평균 최저 청약가점은 60.6점이다. 4인 가족인 30대는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청약가점 만점을 받아도 57점을 넘기 어렵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옮기는 수요자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식으로 규제가 아니라 수요 분산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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