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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 재실사" 또 요구한 현산…아시아나 결국 '노딜' 수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오랜 진통 끝에 '노딜'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매도자측인 채권단이 인수조건 변경까지 내걸며 재협상을 요구했음에도 매수자측인 HDC현대산업개발이 "12주간 재실사가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답을 내놓으면서다. 더이상 딜을 끌고 갈 명분을 잃은 채권단이 계약을 철회하고 '플랜B'를 가동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현산 "12주 실사" 재차 요구…'의지 없는 답' 판단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주기장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 뉴시스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주기장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모습. 뉴시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은 전날 이메일을 통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12주간의 재실사를 요구하는 입장을 재차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채권단은 사실상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의지가 없는 답변이라고 판단하고, 계약해지를 통보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2주 재실사'는 현산이 지난 7월 24일 아시아나항공 매도자인 금호산업에 요구한 사항이다. 당시 현산은 재실사를 요구하면서 그 이유로 ▶지난해 말 2조8000억원의 부채가 추가로 파악된 점 ▶사전 동의 없이 채권단으로부터 1조7000억원을 항공운영자금으로 차입한 점 ▶지난해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이 부적정인 점 등을 꼽았다. 하지만 시장에선 현산이 지난해 12월 17일 체결한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이행할 마음이 없어 재실사를 요구한다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계약 체결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항공업황이 크게 악화돼 결과적으로 당시 SPA 조건이 고평가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동걸·정몽규 만남 뒤 "여기서 No 하면 딜 끝"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左), 정몽규 HDC그룹 회장(右). 중앙포토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左), 정몽규 HDC그룹 회장(右). 중앙포토

채권단은 현산의 재실사 요구에 불가 방침으로 맞섰다. 위태롭게 흘러가던 거래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지난달 26일 만남으로 마지막 결단의 순간을 맞았다. 당시 이 회장은 정 회장에게 "인수조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논의하겠다"는 뜻을 전달하면서 "정말 고민스럽고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걸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인수가격을 다시 따져보는 데까지 협조할테니 재실사 등을 핑계로 빙빙 돌리지 말고 핵심만 얘기하자는 마지막 제안이었다. 당시 채권단 관계자는 "현산이 여기서도 '노(No)'라고 하면 딜이 끝난다"고 설명했다.

전날 현산이 이메일을 통해 채권단 측에 재차 밝힌 재실사 요구는 사실상 거래를 이어갈 마음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산업은행은 현산 측의 첫 재실사 요구가 있던 며칠 뒤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재실사 요청은 과도한 수준이고 기본적으로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인수 진정성은 없으면서 단지 거래 종결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의도"라고 못박은 바 있다.

계약 무산 땐…기안기금 신청, 플랜B 가동할 듯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서 관계자가 드나들고 있다.  뉴스1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서 관계자가 드나들고 있다. 뉴스1

채권단이 끝내 계약 철회를 결정하면 금호산업은 현산 측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게 되며,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관리 체제로 넘어가게 된다. 당초 계약에 따른 현산의 유상증자(2조1771억원)를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만큼, 채권단과 아시아나항공은 곧바로 최대 2조원 규모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신청하게 된다.

채권단의 플랜B가 가동될 가능성도 커졌다. 채권단은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5000억원어치 매입하는 등 지원에 나서면서 금호산업 측과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무산될 경우 매각 대상 지분을 채권단이 임의의 조건으로 매도한다'는 내용의 동반매각요청(Drag-along) 조항이 담긴 특별약정을 체결한 바 있다. 채권단은 올해에도 3000억원 규모의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인수했다. 만약 매각이 무산되면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을 확보했다가, 향후 임의의 조건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매각하는 플랜B를 선택하게 될 전망이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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