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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반열에 서려는 트럼프의 욕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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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임종주 워싱턴총국장

지난 8월 중순 어느 날 워싱턴 DC에서 북쪽으로 110㎞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게티즈버그는 찌는 듯 무더웠다. 157년 전 치열했던 사흘간의 전투가 북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고 맞은 여름도 그랬을 것이다. 희생된 병사의 시신 7000여 구와 말 5000여 마리가 뒤엉킨 마을은 성하의 악취로 진동했다고 한다.

그해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은 게티즈버그로 향했다. 전사자들이 묻힌 곳을 신성한 땅으로 봉헌했다. 그 한쪽에 세워진 조형물에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영속해야 한다”는 당시 연설 문구가 지금도 선명하다.

우리에게 소설 『모비 딕(백경)』으로 잘 알려진 미국 문학계 거성 허먼 멜빌은 자작시 『게티즈버그(1866)』에서 “병사여, 뼈를 묻은 그곳에 영예롭게 안식하라”고 헌사했다. 미국이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게티즈버그와 여생을 함께했다. 남북전쟁의 참혹한 상흔의 기억이자 거룩한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 바로 게티즈버그다.

글로벌 아이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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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공화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후보지로 게티즈버그 사적지를 꼽았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비판 여론의 명분은 공무원의 당파적 활동이나 동원을 제한하는 해치법(The Hatch Act)에 위반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본질은 역사적 성소가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서는 안 된다는 묵시적 정서를 자극한 것이었다.

링컨의 반열을 욕구하고, 그의 두상이 조각된 사우스다코타주 러시모어산에 자신의 얼굴도 새겨 넣겠다고 벼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지난주 백악관 남쪽 뜰, 사우스론에서(이 부분도 해치법 위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선 도전을 향한 기치를 올렸다. 지난 4년을 암흑의 시대로 규정한 바이든 후보를 사회주의 트로이 목마이자 미국의 위대함을 무너뜨릴 파괴자라고 원색적으로 공박했다.

지금은 세기의 명문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는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대한 반응은 당시에는 사뭇 달랐다. 정치적 노선에 따라 “헌신적 언사는 인류의 기록으로 살아남을 것이다”(시카고 트리뷴)는 극찬과 “유치하고, 밋밋하고, 불결한 발언으로 모든 미국인의 뺨이 화끈거렸다”(시카고 타임스)는 혹평이 엇갈렸다고 코넬대 소장 사료는 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수락 연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진영 논리에 따라 기대와 냉소로 뚜렷하게 나뉜다. 링컨 시대의 판박이와 다름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후대는 과연 어떤 점수를 매길까? 역사의 평가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냉엄하고 냉정할 것이다. 으레 그렇듯.

임종주 워싱턴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