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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스가, ‘인지도 약점’ 기시다, ‘아베 정적’ 이시바 물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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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호 03면

‘포스트 아베’는 누구 

차기 일본 총리 유력 후보들. 왼쪽부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로이터·AFP=연합뉴스]

차기 일본 총리 유력 후보들. 왼쪽부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 [로이터·AFP=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晋三·66) 일본 총리가 28일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그를 뒤이어 ‘일본호’를 이끌어나갈 ‘포스트 아베’가 누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민당은 다음달 중 신속히 새 총재를 선출하겠다는 방침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다수당 총재가 중의원 투표를 통해 총리를 맡는다. 자민당은 현재 중의원의 과반을 점하고 있다.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자민당 주요 파벌인 호소다파·기시다파·니카이파 등도 이날 긴급 회동을 했다.

1년짜리 차기 총리 후보 면면 #스가, 무파벌 최장수 관방장관 #아베가 후계자 점찍은 기시다 #이시바는 대중 선호도서 선두 #당 총재 선출 방식 변수될 수도

새 총리 임기는 아베의 자민당 총재 잔여 임기인 내년 9월까지다. 1년짜리 임기가 차기 총리를 뽑는 데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새 총리 유력 후보는 세 명으로 추려진다. 아베 정권 내내 관방장관을 맡아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1) 관방장관, 아베가 낙점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3) 정조회장, 그리고 아베의 정치적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3) 전 간사장 등이다.

스가 장관은 최근 급부상한 후보다. 7년 8개월간 관방장관을 지내며 최장수 타이틀을 얻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이자 내각의 살림꾼으로 안정적인 이미지를 굳힌 게 강점이다. 일본 언론들도 아베 총리가 스가 장관을 유력한 후계자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 두 차례 정례 브리핑에 나서 대중에게도 친숙하다. 지난해엔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이른바 ‘무파벌의 흙수저’ 출신이란 점도 장점이다. 아키타현 딸기 농가 출신인 그는 고교 졸업 후 상경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섭렵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당초 아베 총리가 후계자로 낙점했던 인물이다. 아베 정권 초 외무상을 지내며 내각 경험을 쌓았고 당 3역 중 하나인 정조회장을 맡아 당내 기반도 다졌다. 덕분에 당내 2인자 자리인 간사장 ‘0순위’로 꼽혔다. 총리 네 명을 배출한 명문 파벌 출신으로 뒷배경도 든든하다. 경제를 중시하는 기시다파답게 합리적이고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이다. “돌파력이 떨어진다” “우유부단하다”는 평가와 함께 대중 인지도가 높지 않은 약점을 안고 있다.

반면 아베 총리의 당내 정적인 이시바 전 간사장은 높은 인지도가 강점이다. 최근 2년간 ‘포스트 아베’ 여론조사에서 늘 선두를 지켰다. 2등과의 격차도 커서 대중 선호도에선 압도적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아베 저격수로도 통한다. 지난 6월 일본인들의 공분을 샀던 ‘아베노마스크’ 파문 때는 자신의 블로그에 “총리가 주선한 정책이 이렇게 날림이어선 좋을 리 없다”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시바의 최대 걸림돌은 바로 아베 총리라는 관측이다. 아베 총리도 “이시바만은 절대 안 된다”는 확고한 뜻을 내비쳐 왔다. 여기에 당내 파벌들 지지세도 약하다. 아베가 속한 자민당 내 최대 계파인 호소다파가 98명, 기시다파가 47명인 데 반해 그가 이끄는 이시바파는 19명뿐이다. 이밖에 아소 다로 부총리, 고노 다로 방위상,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 등도 다크호스로 꼽힌다.

자민당 규칙에 따르면 당 총재가 임기 중 사퇴하면 원칙적으로 참의원·중의원과 당원이 참여하는 투표로 새 총재를 선출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긴급한 경우 당 대회를 열지 않고 양원 총회로 후임자를 선출할 수 있게 돼있다. 이럴 경우 소수파의 수장인 이시바 전 간사장은 선출 가능성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도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의 총재 선출을 막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총재를 뽑는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새 총재 임기가 단 1년인 만큼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베 총리와 함께 일해 온 인사를 후보로 내세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같은 관측이 현실화되면 스가 장관과 아소 부총리가 유력 후보가 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의 이날 사임은 극비리에 결정됐다. 자민당 핵심 간부도 “사임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놀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아베 총리 측근들은 이날 아침까지도 “(총리의) 건강 상태에 이상이 없다”며 퇴임설을 일축했다. 스가 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내년 9월까지 임기를 완주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끝내 아베 총리의 발목을 잡았다. NHK는 최근 검사 결과 아베 총리의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병이 지속될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 국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해 사임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는 중3 때부터 50년간 궤양성 대장염을 앓아 왔으며, 2007년 1차 총리 시절에도 이 병이 악화돼 퇴진한 전례가 있다.

NHK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 관저로 출근할 때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오전 각의를 마친 뒤엔 아소 부총리와 30분가량 따로 회담을 했는데, 이때 자신의 몸 상태와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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