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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재정 선진국서 배운다] 下. 미국식 사보험 도입

중앙일보

입력

건강보험 재정이 위기를 맞으면 우선 수입(보험료 인상.국고지원 증액)부터 챙겨온 것이 우리 건보재정 안정대책이다. 건보료 인상을 꺼리는 국민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미국.영국.독일.싱가포르에서는 진료비 지불방식을 바꿈으로써 더 많은 수입을 올리려는 의사들을 견제하면서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지나치게 찾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연간 의료비 1천2백50억달러(1백62조원) 가운데 88%를 보험재정에서 부담하는 독일은 보험의(保險醫)를 줄이기 위해 아예 의사 정년제까지 도입했다.

베를린의 개업의 라인하트 슈바르츠는 "1993년 의사정년제가 도입된 이후 68세부터 의사 자격이 정지된다" 며 "지금처럼 진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의료보험체계가 붕괴될 수 있어 불가피한 조치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독일은 또 의료행위마다 진료비가 추가되는 후불(後拂)식 행위별 수가제로는 진료비 증가를 따라잡기 어렵다고 보고 진료비 지불방식을 총액계약제로 바꿨다.

이는 의료공급자(보험의협회)와 보험조합(질병금고)이 연간 총진료비를 사전 협의.결정하는 선불제다.

슈바르츠는 "연간 진료비가 질병금고에서 보험의협회에 전달되면 협회가 보험의들에게 진료비를 지급한다" 며 "99년 슈뢰더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질병금고와 개별 의사가 직접 계약을 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연간 진료비가 총액계약제로 묶이면 파이를 나눠 먹어야 하는 의사들로서는 의료비용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고 덧붙였다.

질병별로 진료비(진찰.검사.투약.수술비 등)를 한 묶음으로 산정하는 포괄수가제(DRG)도 독일.미국(메디케어)에서 행위별 수가제의 대안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포괄수가제 적용 질환이 분만 등 8개 질환에 불과하지만 독일은 4백여 질환이 해당된다.

그러나 미국 의료재정청(HCFA) 관계자는 "DRG는 한 쪽의 지출을 줄이면 다른 쪽 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balloon effect)' 로 나타날 수 있다" 고 우려했다.

병원이 노약자를 빨리 퇴원시키거나 가급적 중환자로 분류해 많은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환자 본인의 부담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것도 선진국에서 흔히 쓰는 의료재정 위기 타개책이다.

의료재정을 갉아먹는 주요 원인이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국 보건부 존 미들턴은 "본인 부담금 부과는 국민에게 보편적인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국가보건의료체제(NHS)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며 "그러나 재정위기가 심화하면서 의약품 구입.치과치료.안과 진료시 본인이 일부 또는 전부를 부담하도록 정책을 바꿨다" 고 말했다.

이는 사회보험체계(NHI) 국가인 독일도 마찬가지. 독일 국민은 외래진료는 무료지만 의약품(일반의약품 포함) 구입시 25%, 보철.의치를 할 때는 절반 가량을 본인이 부담한다.

특히 약제비를 줄이기 위해 고가약의 경우 보험지급액을 정해 초과분은 본인에게 전액 부담시키는 참조가격제를 채택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의료서비스를 관장하는 영국과 독일도 의료비 절감 등을 이유로 미국식 민간보험을 받아들였다.

공공지출만으로는 급증하는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싱가포르에서 시행 중인 의료저축제(MSA)는 자기 호주머니 돈으로 치료를 받도록 함으로써 환자의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억제하는 독특한 대책이다.

MSA는 일반 저축과는 별도로 자신이나 가족 명의로 의료저축 계좌를 만들게 한 뒤 매월 자신의 소득에 따라 일정액을 적립케하게 제도다.

MSA는 메디펀드(의료보호), 메디세이브(간단한 질환.입원 대비), 메디실드(중증.고액진료 대비) 등 3단계로 운영되며 가입자는 매월 소득의 6~8%(회사와 본인이 반씩 부담)를 저축해야 한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림맹킨 교수는 "의료저축은 이자는 물론 세금도 면제해주고 상속까지 허용하는 등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며 "싱가포르 인구가 3백10만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임금 노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제도" 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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