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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빛 하늘서 못 다 펼친 책사랑 도자기사랑 누리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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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사람은 책을 통해 꿈을 이룬다“던 ‘출판계의 산 역사’ 김낙준 금성출판사 회장이 24일 88세로 별세했다. 고인과 절친한 이근배(80)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이 추도사를 보내왔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사람은 책을 통해 꿈을 이룬다“던 ‘출판계의 산 역사’ 김낙준 금성출판사 회장이 24일 88세로 별세했다. 고인과 절친한 이근배(80)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이 추도사를 보내왔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김낙준 회장님! 회장님이 글자 하나 그림 한장 손수 심고 가꾸어낸 금성출판사 창업 55주년 기념 『김낙준 명품 도자』 선집 출판과 함께 미수연(米壽宴)을 앞에 두고 그리 바쁜 걸음이시더니 어이 이리 떠나시는 것입니까.

김낙준 금성출판사 회장 영전에

바로 열흘 전이었어요. 출판 일생으로 이룬 정재(淨財)를 바쳐 한 점 한 점 모은 조선백자 등 명품도록 장정을 자문하러 저와 함께 평창동 이어령 선생 댁을 갔던 날이. 저 항일기, 은풍보통학교 시절 일본에 일하러 간 형님이 보내준 잡지 『친구』를 읽으며 책을 만났고 1961년 이설주 시인 댁이 경영하던 대구 ‘문화서점’ 점원에서 마침내 1965년 금성출판사를 창업하고 이 나라 지식산업의 최 일선, 최선두를 달려왔지요. 『세계문학 전집』 『국어대사전』 등 대작업을 이루었고, 학생들은 교과서와 각종 콘사이스 등 금성의 책을 읽지 않고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책 가난에 울었던 탓일까. ‘소년글짓기대회’를 개최하고 금성문화재단을 설립해 출판, 문화, 예술 등 지원과 MBC 창작동화 대상 제정, 독서 새 물결 운동 등 어느 출판인도 해내지 못한 이 땅의 독서문화 예술진흥에 큰 발자취를 남기셨습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이던 1993년에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책의 해’를 맞아 금속활자의 나라, 팔만대장경의 나라, 한글의 나라 자랑스러움을 나라 안팎에 떨치기도 했지요.

김낙준 회장님! 금성출판사의 위업도 먼 미래에까지 큰 산맥이 될 것입니다마는, 회장님의 한국 미술 사랑, 도자 사랑으로 모은 청자 원앙 연적, 오족용 백자용충, 진사 금강산 필세 등 세상에 아직 얼굴을 내지 않은 수백 점의 명품들은 저 간송(澗松)과 호암(湖巖)에 이은 ‘김낙준 미술관’의 찬란한 빛기둥으로 영원히 뻗어갈 것입니다.

이근배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이근배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김낙준 회장님! 제게는 스승이셨고 형님이셨고 친구였습니다. 어찌하여 열흘 전 그날 헤어질 때 ‘이게 마지막이네’ 그 말씀이 없으셨던가요. 아무 일도 없이 그냥 밥 먹자고 자주 하시던 전화도 이제는 못 받겠네요. 부디 저 청자빛 하늘에 오르시어 못 다 펼친 책 사랑, 못 다 어루만지신 도자기 사랑 산처럼 강처럼 누리소서.

후학 이근배 곡만(哭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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