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변화무쌍 김광현, 류현진 포커페이스와 다른 매력

중앙일보

입력 2020.08.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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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김광현은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포커페이스’ 류현진과 다른 김광현의 매력이다. [AP=연합뉴스]

김광현은 마운드 위에서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포커페이스’ 류현진과 다른 김광현의 매력이다. [AP=연합뉴스]

김광현(31·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안산공고에 재학할 당시, 그의 학교는 ‘광현공고’로 불렸다. 투타 전국 최강 안산공고 에이스는 키가 훤칠하고 늘 활짝 웃었다. 다들 “타고난 스타감”이라고 했다.

역동적인 투구만큼 다양한 표정
“표현 자제했는데 지금은 신경 안써”
더 자주, 더 많이 웃을 수 있기를

고교 2학년 때부터 3학년을 압도했다. 2005년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2학년으로는 유일하게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포철공고 전에선 9이닝 탈삼진 16개로 1-0 완봉승했다. 안산공고의 1점은 9회 선두타자 김광현이 안타로 나가 2루 도루에 성공해 만들었다.

김광현은 그때부터 메이저리그(MLB) 진출을 꿈꿨다. 당시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꼭 ‘꿈의 무대’에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듬해 SK 와이번스에 입단하고 에이스로 명성을 쌓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한국 야구를 뒤흔든 유망주의 오랜 꿈은 프로 14년 차에 이뤄졌다.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선발을 보장받지 못한 채 스프링캠프를 시작했다. 시범경기 호투로 선발 로테이션 중 한 자리를 꿰차나 싶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개막이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사이 부상 중이던 선발 후보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합류했다. 지난달 25일에야 개막한 정규시즌.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MLB 데뷔전을 치렀다.

김광현 여러가지 감정들

김광현 여러가지 감정들

마르티네스는 다시 이탈했고, 김광현에게 선발 기회가 돌아왔다. 이번엔 팀 내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했다. 첫 등판으로부터 23일이 지나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투구 수를 갑자기 늘릴 수 없어 3과 3분의 2이닝만 던졌다. 그리고 22일(한국시각) 두 번째 선발 등판인 신시내티 레즈전. 마침내 ‘진짜 김광현’을 보여줬다. 6이닝 무실점. MLB 첫 승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가장 인상적인 건 김광현의 투구 템포다. 베테랑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가 사인을 내면, 그는 고개 한 번 젓지 않았다. 자신감과 공격성, 믿음을 동시에 보여줬다. MLB닷컴 세인트루이스 담당 기자 제프 존스는 “인터벌이 다르빗슈 유(시카고 컵스)보다 10배는 빨랐던 것 같다”고 감탄했다.

김광현은 역동적인 투구폼만큼이나 표정도 변화무쌍하다. MLB 선배인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류현진은 유명한 ‘포커페이스’다. 경기 중 아쉬운 상황이 벌어져도, 늘 같은 표정으로 평정심을 유지한다. 마운드에서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

반면 김광현은 삼진으로 위기를 벗어나면 활짝 웃는다. 홈런을 맞으면 고개를 갸웃하며 탄식한다.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다채로운 표정은 경기에 또 다른 극적 요소를 부여한다. 삼진에 뒤따라오는 에이스의 환한 미소는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한때는 김광현도 류현진의 포커페이스를 부러워했다. 이제는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스스로 잘 안다. 그는 지난해 “잘 웃는다고 좋아하는 분도 많았지만, 그만큼 욕도 먹었다. ‘표현을 자제해야 하나’ 신경 쓴 적도 있다. 지금은 경기 분위기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내 스타일대로 하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김광현은 아직 ‘100%짜리 미소’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모든 게 새롭고 어색한 MLB 루키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 그런데 가만히 보면 2007년의 한 장면과 오버랩 된다. 신인 김광현은 당시 최고 포수 박경완(현 SK 감독대행)과 호흡을 맞췄다. 그때도 그는 자신의 공과 좋은 포수만 믿었다. 그렇게 스포트라이트의 부담을 극복했다. 지금 그의 파트너는 MLB 최고 포수 몰리나다. 믿을 수 있는 동반자다.

김광현은 MLB 첫 시즌을 위해 출국하면서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와 귀국 때도 많은 취재진 앞에서 인터뷰하고 싶다. 아직은 나만의 희망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금씩 그의 희망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팬이 환하게 웃는 김광현을 더 자주, 더 많이 보고 싶어한다. 류현진의 14승 시즌 만큼이나.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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