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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PC룸은 예약 마감"···PC방 막자 모텔로 몰린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3일 오후 11시 수원 인계동의 한 모텔(무인텔)의 숙박 상황. 이 모텔 관계자는 "PC룸은 현재 예약이 다 찼다"고 설명했다. 채혜선 기자

23일 오후 11시 수원 인계동의 한 모텔(무인텔)의 숙박 상황. 이 모텔 관계자는 "PC룸은 현재 예약이 다 찼다"고 설명했다. 채혜선 기자

“고사양 컴퓨터가 있는 방이 10개 정도 있는데 모자란다고 느낀 건 처음이에요. 다들 어디서 알고 오는지…”

경기도 수원 인계동의 한 모텔은 정부의 PC방 등 영업중단 조치로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모텔 주인 A씨는 24일 "어젯밤에도 모텔 내 고사양 PC가 있는 방은 만실이었다"며 "오늘도 예약이 꽉 찼다”고 말했다. 인근 모텔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또 다른 모텔 업주는 “PC방 영업중단 후 PC룸이 있는지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주말 내내 PC룸은 빈방이 없었다”고 말했다.

PC방 막았더니…모텔 찾는 사람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조치에 따라 PC방 등 고위험시설의 영업이 중단되자 컴퓨터가 있는 모텔을 찾는 게이머들가 늘고 있다. 게이머들은 이런 모텔을 ‘게임텔’ ‘PC텔’이라고 부르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정부의 방역 조치가 닿지 않는 모텔이 일부 게이머 사이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 셈이다.

24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게임텔’ ‘겜텔’ 등 관련 단어를 검색했더니 정보 공유성 방이 수십 개 떴다. 실제로 접속한 한 방에서는 “지금 성남 모란 피시텔 만실” “성남에 7시간 대실 1만5000원” “서울 영등포 겜텔 사양 고급. 롤·옵치(오버워치) 돌아감” 등과 같은 정보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게임 커뮤니티선 정보 공유도 활발   

24일 게임텔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상황. 사진 카카오톡 캡처

24일 게임텔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상황. 사진 카카오톡 캡처

또 카카오톡 같은 SNS에선 모텔에 같이 갈 동반자를 찾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대실·숙박 요금을 나눠내 경제적 부담을 덜어보기 위해서다. 익명의 한 대화 참여자는 “대실 2만원이니까 인당 1만원씩 내기로 하자”고 제안했다. 비슷한 제안은 속속 올라왔다.

게임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텔에 도착해 게임을 즐기고 있다는 후기도 잇따르고 있다. 한 네티즌이 “월차 때 게임이나 하려고 고사양 PC 모텔에 왔다. 8시간에 2만5000원이었다”며 올린 글에는 “샤워도 하고 졸리면 자도 되고 가격도 합리적” “이젠 ‘모캉스’(모텔 바캉스)”라는 댓글이 달렸다.

숙박업소들도 고객 수요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야놀자·여기어때 등 숙박 애플리케이션(앱)에 들어가면 ‘게이밍 룸’ ‘커플PC룸’ 등을 전면에 내세운 곳이 늘고 있다. 소개 화면에 ‘전 객실 최고사양 커플PC’라는 안내를 걸어둔 한 모텔 관계자는 “문의 전화가 많아 그런 안내를 써놨다”고 말했다.

지방 원정대까지 등장…“형평성 어긋나”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 문화체육과 직원들이 고위험시설로 분류된 관내 PC방에 집합금지명령서를 붙이고 있다. 사진 성동구

20일 오후 서울 성동구청 문화체육과 직원들이 고위험시설로 분류된 관내 PC방에 집합금지명령서를 붙이고 있다. 사진 성동구

PC방 업주들은 정부의 조치가 신중하지 못했다며 애먼 피해자가 됐다는 반응이다. 서울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업주 B씨는 “PC방 영업중단을 한다고 해서 그 수요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데로 분산이 된다”며 “바이러스가 PC방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업중단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B씨는 “결국 사람들이 모텔이나 지방을 찾고 있다”며 “방역 당국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2일에는 수도권과 가까운 충남 천안 등으로 PC방 원정을 떠나는 이들이 생겼다고 한다. 한 지역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당시 “수도권 PC방이 문 닫자 천안으로 게임을 하러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며 “꼭 천안까지 와서 게임을 해야 하냐. 조금만 참아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을 위한 지방 원정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수도권에만 적용 중이던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해서다. 2단계 조처는 23일 0시부터 2주간 시행된다. 이에 따라 수도권뿐 아니라 비수도권의 유흥주점·노래연습장·뷔페·PC방·대형학원 등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고위험시설은 오는 9월 6일까지 시설 운영과 영업이 중단된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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