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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계곡길 사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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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우리말 찾기 여행 ⑤ 강원도 정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옛날엔 저 가파른 절벽에 매달려 다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옛날엔 저 가파른 절벽에 매달려 다녔다고 한다.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하나의 낱말이다. 13개 음절로 이뤄진 이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이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깊은 계곡에 숨어 있다. 이름을 읽으면 바위 같지만 길이다. ‘아리랑 선생’으로 알려진 진용선(57)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이 2007년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를 펴낸 적 있다. 이 책에서 가장 긴 지명의 정체가 처음 공개됐다. 정선에는 이 열세 글자 길 말고도 별난 이름의 장소가 수두룩하다.

5개 의미가 숨어있는 계곡 이름

이 단어에는 모두 5개 의미가 들어있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안돌이’는 ‘바위가 많아 두 팔을 벌려 바위를 안고서야 가까스로 지나다’는 뜻이고 ‘지돌이’는 ‘바위를 등지고 돌아가다’는 뜻이다. ‘다래미’는 다람쥐의 정선 사투리다. 각 단어의 뜻을 종합한 전체 의미는 이렇다. ‘바위를 안거나 등지고 지나가야 하는, 다람쥐도 한숨을 쉬는 험한 바위길.’ 한 편의 서사가 읽히는 작명이다.

지도는 진용선 정선아리랑 연구소장이 손수 그린 정선군 북평면 지명 지도.

지도는 진용선 정선아리랑 연구소장이 손수 그린 정선군 북평면 지명 지도.

길이 얼마나 험하면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숙암리는 정선군 서북쪽 맨 끝의 마을이다. 평창군과 마주한다. 크고 높은 산이 첩첩이 에워싼, 문자 그대로의 두메산골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숙암리는 예부터 계곡이 깊기로 유명했다. 숙암리를 가로지르는 여러 계곡 가운데 갈미봉(1273m) 아래 단임계곡 안에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가 있다. 계곡 어귀에서 7㎞ 정도 들어간 지점이다.

1986년 오대천 옆으로 신작로가 나기 전 숙암리 사람들이 이 가파른 계곡 길에 매달려 평창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물길이 바뀌어 옛길이 지워졌다. 직접 보니 맑은 계곡 건너편에 주름치마처럼 생긴 바위 절벽만 서 있다. 도무지 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절벽이었다. 이 주름진 바위를 ‘치마들이’라고 한단다.

자연을 닮다

진용선 소장이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를 가리키고 있다.

진용선 소장이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를 가리키고 있다.

정선에는 ‘졸드루’ ‘진드루’ 같은 지명도 있다. ‘졸드루’는 ‘좁은 들’이고 ‘진드루’는 ‘긴 들’이다. 평지가 드문 정선에서 밭 일구는 일은 고역이었다. 몇 뙈기 안 되는 땅이라도 옥수수·콩 따위를 심을 수 있으면 고마웠다. 하여 꼬박꼬박 이름을 지어 불러줬다.

임계면 도전리에는 ‘뙡’이라는 1음절 지명이 남아있다. 음절이 하나뿐이므로 ‘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지명이다. 하나 ‘뙡’과 뜻이 같은 장소는 정선에 널려 있다. 크기가 얼마 안 되는 자투리 밭을 말하기 때문이다.

좁은 들이란 뜻의 졸드루.

좁은 들이란 뜻의 졸드루.

정선의 지명은 유별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도 있고 가장 짧은 지명도 있다. 우선 유난히 많은 우리말 지명이 눈에 띈다. 이름에 밴 사연을 알고 나면 애틋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다. 진용선 소장의 설명을 옮긴다.

“정선이 바깥세상과 격리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긴 세월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살다 보니 독자적인 문화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정선 지명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을 닮았다는 데 있습니다. 정선 사람은 일부러 말을 늘입니다. 천천히 그리고 온전히 뜻을 전달합니다. 자연이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사람도 시간에 매이지 않았지요. 정선아리랑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정선=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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