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한반도에 폭격기 6대 띄우자…러시아도 6대 출격 맞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과 러시아가 한반도 등 동아시아 상공에서 충돌하는 양상이다.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이 지역에 폭격기를 띄우자 러시아도 바로 폭격기를 출격시켜 맞대응에 나섰다.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Tu-95MS. [일본 방위성 제공]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Tu-95MS. [일본 방위성 제공]

20일 군 당국에 따르면 전략폭격기 Tu-95MS 2대, 수호이(Su) 계열 전투기 2대 등 러시아 군용기 4대가 전날(19일) 낮 12시쯤 20분간 독도 동해상 인근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한·일 방공 중첩구역을 따라 남하하다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JADIZ에선 러시아 군용기 2대가 더해져 모두 6대가 공중 훈련을 벌였다고 한다.

군 당국은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 즉시 F-15K, KF-16 등 공군 전투기를 긴급 투입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이 러시아 군용기에 경고통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항공자위대도 JADIZ 진입 때 전투기를 출격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방공식별구역(ADIZ)은 영공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항공기가 진입하기 전 사전 통보하는 게 국제관례다. 러시아는 모든 나라에 대해 ADIZ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군 관계자는 “사전에 러시아 측의 통보가 없었다”며 “한국 영공을 침범하진 않아 감시 비행과 경고통신 외에 다른 전술조치는 취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0여 차례 이후 올해 뜸하던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이 현시점에 벌어진 건 최근 미국의 폭격기 출격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지난 17일 B-1B 전략폭격기 4대와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2대 등 6대의 폭격기를 대한해협과 일본 인근 상공에 띄웠다. B-1B 2대는 미국 텍사스 다이스 공군기지에서, 다른 2대는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각각 출격했고, B-2는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를 떠나 비행했다. 다양한 지역에서 작전이 시작돼 동아시아에서 한데 뭉치는 이례적인 ‘동시 작전’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북·중·러를 겨냥해 전 지구적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러시아는 지난해 11월 27일 Tu-95MS를 동아시아에 띄운 것을 마지막으로 그동안 이 지역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러시아가 전략폭격기를 출격시킨 점도 미국의 폭격기 작전을 의식한 행보로 분석된다. Tu-95MS는 항속거리가 1만5000㎞이고, 탑재한 Kh-55 공대지 미사일은 사거리가 3000㎞에 달한다. 항속거리 1만2000㎞인 B-1B, B-2와 견줄 수 있는 장거리 공격 전력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 각자 정당성을 부여하며 ‘말’로도 맞부딪쳤다. 러시아 국방부는 19일 “동해와 태평양 북서부 공해 상공에서 정례 비행을 했다”며 “러시아 공중-우주군 소속 군용기들의 모든 비행은 공중 이용에 관한 국제법 규정들을 철저히 준수하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 공군의 전략적 억지 및 핵 통합 담당 부참모장인 리처드 클라크 중장은 이날 한 포럼에서 최근 미 폭격기 출격을 놓고 “억지 조치일뿐 아니라 우리 동맹국들에 대한 보장 조치로서 존재하는 유연하고 가시적인 전력이라는 점을 확실히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행위”라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이번 KADIZ, JADIZ 진입에는 한·미·일에 대항해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향후 군사적 긴장 고조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군 당국자는 “러시아가 KADIZ 진입을 정례 비행으로 표현한 건 앞으로 이곳에서 계속 훈련을 하겠다는 의미”라며 “미국과 러시아의 무력시위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