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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에 대한 이중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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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미국 주요 정당 소속 첫 여성 부통령 후보는 제럴딘 페라로였다. 1984년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였던 그는 “블루베리 머핀을 구울 줄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물론이죠. 당신은요?”였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났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여성 후보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HP 최고경영자(CEO)를 지내고 2015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칼리 피오리나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여성은 호르몬이 달라 대통령직에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오벌오피스(대통령 집무실)에서 호르몬 문제는 남자들에게 있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지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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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최종 낙점되기까지 가장 큰 장애물은 경력 부족이나 인성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야심 논쟁이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 최측근과 거액 기부자들 사이에서 해리스가 야심이 너무 커 부통령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들은 해리스 낙선 운동까지 벌였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야심녀’ 해리스는 2인자 본분을 잊고 곧바로 자기 정치를 시작할 것이며,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다고 바이든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그런 뒤 “대통령에 뜻이 없다”고 한 캐런 배스 하원의원을 해리스 대안으로 띄웠다.

하지만 다른 후보는 갖지 못한 해리스의 경쟁력, 죽은 장남과의 친분 등을 꼼꼼히 따진 바이든의 선택은 해리스였다. 결국 해리스의 전국 지명도, 세 차례 선출직 경험, 트럼프를 몰아붙일 수 있는 검사 자질, 스타성, 이민자 스토리를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해리스의 능력은 원하지만, 야심은 없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을 거쳐 캘리포니아 법무장관(검찰총장), 상원의원까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정치인 중 한 명인 그를 이끈 원동력이 야심이었을 테니까. 야심 논쟁은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학교 등 이 땅의 여성들에게 흔히 요구하는 이중잣대를 보여준다.

역대 미국 부통령 48명 가운데 14명은 대통령이 됐다. 토머스 제퍼슨, 해리 트루먼, 리처드 닉슨, 조지 HW 부시가 그 길을 걸었다. 바이든은 15번째에 도전하고 있다. 심지어 대선에 먼저 도전했다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8년 지냈다. 차별에 익숙하다 보면 무엇이 차별인지 알기 어렵다. 쉬운 기준은 “남자에 대해 똑같은 비판을 하겠는가”를 묻는 것이다. 남자 대신 백인·흑인을 넣으면 인종차별도 거를 수 있을 듯 하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