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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악플 줄었다"는데 숨진 고유민…뒷북 된 댓글 잠정중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간 순 방문자 수(MAU)가 각각 3800만명, 3600만명에 달하는 국내 양대 포털 네이버·카카오(다음)가 지난 7일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동시에 발표했다. 지난 1일 여자 프로배구 선수 출신 고(故) 고유민(25)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데는 악성 댓글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인터뷰가 공개된 이후 나온 결정이다. 스포츠 선수들이 인신공격성 댓글로 힘들어하고, 포털이 이를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스포츠 뉴스의 댓글 창을 부랴부랴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국내 포털의 사후약방문식 댓글 대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17년 '드루킹 사건'처럼 댓글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거나, 이번 고유민 선수처럼 악성 댓글로 피해 보는 사람이 발생하고 나서야 땜질식 대책을 하나씩 내놓기 때문이다.

가수 설리(사진 왼쪽)과 배구선수 고유민. 네이버·카카오 포털은 지난해 10월 설리가 사망한 뒤 연예 뉴스 댓글 폐지를, 고유민이 사망한 뒤인 지난 7일에는 스포츠 뉴스 댓글 잠정 폐지를 발표했다. 악플로 인한 피해와 댓글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이후 조치였다. [중앙포토]

가수 설리(사진 왼쪽)과 배구선수 고유민. 네이버·카카오 포털은 지난해 10월 설리가 사망한 뒤 연예 뉴스 댓글 폐지를, 고유민이 사망한 뒤인 지난 7일에는 스포츠 뉴스 댓글 잠정 폐지를 발표했다. 악플로 인한 피해와 댓글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이후 조치였다. [중앙포토]

이번 스포츠 뉴스 댓글을 없애기로 한 두 회사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이다. 네이버는 "악성 댓글 노출을 자동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이 기술의 실효성이 담보되면 댓글 서비스 재개를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카오도 "외부 전문가와 함께 (댓글) 서비스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댓글 서비스는 포털 입장에서 댓글 작성자를 모으는 동시에 댓글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클릭을 유도하는 훌륭한 상업적인 수단이다. 하루에도 수천만 명 방문자를 유도하는 댓글을 영구히 포기하기는 아쉬우니 '기술을 보완해 댓글 서비스를 재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네이버가 7일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영구히 없애는 것은 아니고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네이버는 "악성 댓글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해 효과를 입증한 다음 댓글 서비스 재개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네이버가 7일 스포츠 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영구히 없애는 것은 아니고 잠정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다. 네이버는 "악성 댓글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해 효과를 입증한 다음 댓글 서비스 재개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피해자는 줄줄이 나오는데 두 포털은 자신들의 댓글 정책으로 악성 댓글이 줄었다고 오히려 자화자찬한다. 네이버는 지난달 21일 "댓글 이력 공개 제도 등의 효과로 삭제되는 댓글 건수가 63%나 줄었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도 6월 "댓글 접기 기능을 도입하니 욕설·비속어 댓글이 20%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두 회사 발표가 있은 지 두 달도 안 돼 악성 댓글로 목숨을 끊은 피해자가 또 발생했다.

네이버·카카오가 악성 댓글 근절책으로 인공지능(AI) 기술에 의존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네이버는 지난해 4월 'AI클린봇 2.0'이라는 악플 탐지·차단 기술을 개발해 고도화하고 있다. 카카오도 2017년부터 욕설·비속어를 치환하고 악성 댓글을 자동으로 필터링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첨단 기술이라도 악성 댓글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대책은 될 수 없다.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스포카도'가 공개한 고유민 선수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고 선수가 언급한 악성 댓글들은 "내가 발로해도 그것보단 잘하겠다", "네가 배구 선수냐"와 같은 조롱식의 댓글이었다. 이 같은 댓글을 AI가 걸러내 차단하기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프로배구 고유민 선수가 생전 악성 댓글에 대한 심경을 밝힌 인터뷰.  스포츠 유튜브 채널인 스포카도가 고 선수 사망 후인 지난 3일 "악플로 고통 받는 선수가 더이상 없길 바라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영상을 올린다"며 고 선수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스포카도]

프로배구 고유민 선수가 생전 악성 댓글에 대한 심경을 밝힌 인터뷰. 스포츠 유튜브 채널인 스포카도가 고 선수 사망 후인 지난 3일 "악플로 고통 받는 선수가 더이상 없길 바라는 유족의 요청에 따라 영상을 올린다"며 고 선수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스포카도]

연예·스포츠·일반 뉴스 댓글 서비스를 각각 분리해 일부만 막는 정책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 부문을 막아도 결국 비슷한 악성 댓글 문제가 다른 부문에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용국 동국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런 땜빵식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며 "포털은 댓글이 문제가 된다고 일단 댓글 창을 닫을 것이 아니라 댓글의 기명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변죽만 울리는 땜질식 대책이 아닌 뉴스 서비스뿐 아니라 모바일 라이브, 소셜미디어 등 이용자가 참여하는 모든 영역에 대한 댓글, 언어 정책을 기본부터 점검하는 것이다.

하선영 산업기획팀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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