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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적 황정민, 정밀한 이정재…63만 홀린 '다만 악' 액션 비하인드

중앙일보

입력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주연 배우 황정민이 촬영 현장에서 환호를 질렀다. 그 왼쪽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웃는 이가 '기생충'에 이어 이번 영화에 참여한 홍경표 촬영감독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주연 배우 황정민이 촬영 현장에서 환호를 질렀다. 그 왼쪽에서 빨간 모자를 쓰고 웃는 이가 '기생충'에 이어 이번 영화에 참여한 홍경표 촬영감독이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액션 장인들의 만남이 돌아온 ‘좀비떼’보다 강했다. 황정민‧이정재 주연 액션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가 5일 개봉해 이틀만에 63만 관객을 동원하며 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반도’(이틀째 57만)를 제치고 올여름 최고 흥행 속도를 기록했다. 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다만 악…’의 이틀간 최다 스크린 수는 1868개로, 지난달 극장가를 선점한 ‘반도’(2358개) ‘강철비2-정상회담’(2138개)보다 적었지만 좌석 판매율(18.2%)에서 두 경쟁작을 앞질렀다.

‘반도’보다 빠르다…이틀만에 관객 63만 #황정민?이정재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태국?일본?한국 하드보일드 액션 제작기

'반도' 흥행 앞지른 '다만 악…' 액션 

은퇴하려던 암살자 인남(황정민)이 태국에서 벌어진 납치‧사망 사건에 뛰어들며 일생의 업보와 마주하게 되고 그런 그를 잔혹한 재일교포 야쿠자 레이(이정재)가 뒤쫓는단 줄거리다. ‘신세계’(2013)의 황정민‧이정재가 7년만에 뭉쳐 한국‧일본‧태국 3개국을 누비며 피‧땀 튀는 맞대결을 펼쳤다.

이번 영화에서 황정민과 '신세계' 후 7년만에 뭉친 이정재(왼쪽). 이건문 무술감독은 그에 대해 "준비 과정에 철두철미하다. 한두 동작이 잘 되지 않으면 이틀에 걸쳐 연습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번 영화에서 황정민과 '신세계' 후 7년만에 뭉친 이정재(왼쪽). 이건문 무술감독은 그에 대해 "준비 과정에 철두철미하다. 한두 동작이 잘 되지 않으면 이틀에 걸쳐 연습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개봉 후엔 호평이 앞선다. “뻔한 내용”(CGV 예매관객)이란 비판도 있지만, “직진 액션으로 모든 걸 다 뿌시는 액션 신세계”(메가박스 예매관객) “(인남과 첫 격투신 속 레이에게) 바로 눈앞에 먹이를 두고 어쩔 줄 몰라하는 광기가 느껴졌다”(영화 커뮤니티 익스트림무비 회원) 등 액션‧호연에 대한 칭찬이 많다.

칸 심야상영 부문에 초청된 데뷔작 ‘오피스’에 이어 각본‧연출을 겸한 홍원찬(41) 감독, ‘기생충’ 이후 새 도전에 나선 홍경표(58) 촬영감독, 처음 액션영화에 참여한 이건문(44) 무술감독(‘내안의 그놈’ ‘판도라’)을 개봉 전 각각 인터뷰와 e메일로 만났다.

차로 육탄전 하듯 리얼한 추격전 찍었죠 

태국 인력거 툭툭에서 뛰어내린 야쿠자 레이(이정재)가 화면 너머 인남(황정민)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그 총에 인남을 쫓아온 태국 경찰들이 당하면서 추격전은 복잡한 양상으로 질주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태국 인력거 툭툭에서 뛰어내린 야쿠자 레이(이정재)가 화면 너머 인남(황정민)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그 총에 인남을 쫓아온 태국 경찰들이 당하면서 추격전은 복잡한 양상으로 질주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촬영감독님과 ‘우리 영화는 막판까지 다음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자. 계속 뭔가 달려가게 하자’ 했어요.” 홍원찬 감독의 말이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나한테는 사실 첫 정통 액션 영화다. 장르영화의 끝을 달리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해외 촬영이 전체의 80%에 달하는 영화다. 대규모 액션은 태국에서 진행됐다. 특히 마피아가 장악한 랑야오 마을 장면은 인남과 레이, 태국 경찰이 총‧칼‧육탄전을 총동원해 쫓고 쫓기는 추격 액션이 압권이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전쟁 영화 경험을 살려” 찍었다. 홍원찬 감독은 “인남으로 비롯된 여러 집단이 혼란스럽게 부딪히는 상황”이라면서 “액션에 가장 집중한 시퀀스”라 강조했다. 이건문 무술감독은 “한정된 공간 탓에 시속 100㎞ 이상 자동차 추격전을 할 수 없어서, 차로 육탄전을 하는 느낌으로 갔다”고 전했다.

인남(황정민)이 일본에서 마지막 암살 임무를 격렬하게 마친 뒤 고요해진 모습. 홍경표 촬영감독은 "리듬과 템포감을 모두 하나하나 정해놓고 찍어나갔다"고 설명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인남(황정민)이 일본에서 마지막 암살 임무를 격렬하게 마친 뒤 고요해진 모습. 홍경표 촬영감독은 "리듬과 템포감을 모두 하나하나 정해놓고 찍어나갔다"고 설명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복잡한 액션 동작을 하나하나 슬로모션으로 새기듯 찍어낸 ‘스톱모션’ 촬영기법도 빛을 발했다. “보통 액션영화는 실제로 못 때리니까 카메라 구도를 잡고 대역을 쓰기도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게 찍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고 홍경표 촬영감독은 귀띔했다. 홍원찬 감독도 처음부터 “너무 현란하기보단 때리고 맞는 동선‧타격감이 제대로 전달되는 ‘리얼 액션’”을 주문한 바. 이건문 무술감독은 “간단한 동작을 힘있게 촬영하면 리얼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 (애니메이션으로 직접 시도해본) 스톱모션 촬영방법을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인남은 오른쪽, 레이는 왼쪽에서 공격하죠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촬영 현장에서 홍경표 촬영감독.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촬영 현장에서 홍경표 촬영감독.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엔 인물이 마치 초상화처럼 담기는 순간도 있다. 인남이 일본 야쿠자를 살해하는 첫 등장신에선 새하얀 안전모 아래 피투성이 야차 같은 그의 얼굴이 포착된다. 인남과 레이가 태국에서 처음 맞붙는 장면에선 두 배우가 대사 없이 눈빛과 장검, 맨몸 액션만으로 강렬한 감정을 폭발한다.

“레이는 인생을 되게 험하게, 자신감으로 살았을 것 같은 타고난 싸움꾼이죠. 인남은 20년 넘게 훈련받고 시키는 대로 행하는 수동적인 인물이죠. 둘의 차이가 액션에서도 구분 되게 신경 썼어요.”(이건문 무술감독)
“인남은 항상 오른쪽에서 왼쪽, 레이는 그 반대 방향으로 공격하죠. 액션이 계속 펼쳐져도 관객이 헷갈리지 않고 인물들의 대립을 볼 수 있게 방향성을 정해두고 촬영했죠.”(홍경표 촬영감독)

황정민은 '동물적', 이정재는 '디테일'

두 배우의 연기 스타일도 달랐다. 황정민에 대해 이건문 무술감독은 “합을 짜서 주면 되게 동물적으로 빨리 받아들인다. 약간 운동 스타일”이라며 인남이 절박한 난투를 벌이며 적진을 치고 올라가는 태국 부라파호텔 계단 액션을 꼽았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인남이 자신이 찾던 인물과 조우하고 울컥하게 만드는 장면을 황정민이 한 테이크로 끝내서 놀랐다”고 했다.

일본에 이어 한국 서울과 인천 장면은 정적인 화면에 담겼다. 이어 태국에선 카메라가 인물을 뒤쫓으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일본에 이어 한국 서울과 인천 장면은 정적인 화면에 담겼다. 이어 태국에선 카메라가 인물을 뒤쫓으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정재의 명장면으론 촬영‧무술감독이 나란히 첫 액션인 차고지 격투를 들었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레이가 셔터를 올리고 등장하는 몸짓과 눈빛 하나로 이미 끝났다. 이정재 배우는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새로운 액션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옛날 홍콩영화 같은 정서, ‘폼생폼사’를 담아내고 싶은 영화였어요. 레이 덕분에 그런 느낌이 잘 살았죠.”

3개국 로케이션별 액션‧촬영 콘셉트도 차별화했다. “일본에선 암살자 인남이 각인되길 바랐다면 한국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프로끼리의 싸움이죠. 태국에선 현장성을 살리려 했습니다.” 이건문 무술감독의 설명이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인남이 피폐해져 있는 킬러 상태로 시작되는 일본은 전체 톤을 흐리게, 서울 장면까지 되도록 해 없는 날 찍었다. 방콕부터 해가 쨍한 강렬한 느낌으로,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주인공을 계속 따라가도록 콘셉트를 잡았다”고 했다.

'기생충' 때 억눌린 것 터뜨렸죠

15년 전 곽경택 감독의 ‘태풍’을 태국에서 찍었던 홍 촬영감독은 이번 영화 촬영지 헌팅을 하느라 전작 ‘기생충’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 순간 태국 현지에 있었다. “‘기생충’이 꽉 짜인 완벽하게 컨트롤된 구도로 작업했다면, ‘다만 악…’은 움직임이 많아 다양하게 도전해볼 수 있었죠. 심지어 주인공들이 머무르는 집도 없다는 게 좋았어요. 촬영감독으로서 ‘기생충’ 때 억눌렸던 것을 터뜨릴 수 있었죠.”

이건문 무술감독(가운데)이 레이의 태국 첫 액션인 차고지 격투 장면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이건문 무술감독(가운데)이 레이의 태국 첫 액션인 차고지 격투 장면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총격 액션 위주였던 시나리오에 인남과 레이가 몸으로 부딪히는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태국 현지에서 회의를 거듭하며 동선을 세공해나갔다. “일본은 촬영허가가 잘 안 나고, 태국에선 국왕이 나오는 이미지는 화면에 등장하면 안 되는데다 덥고 습한 기후, 교통체증 탓에 3개월 촬영 기간 애를 먹었죠.” 홍원찬 감독이 들려준 해외 촬영 때 얘기다.

처음 '청불' 등급 받고 당황해 세부수정

현지 여건상 장면의 설정이 바뀌기도 했다. 수류탄 폭발로 차가 뒤집히는 장면이 한 예다. “원래는 차가 벽에 부딪히면서 아래로 곤두박질쳐 뒤집히는 상황인데 태국은 지반이 약해서 지하로 떨어지는 도로 구조가 없었어요. 아이디어를 짜내다가 무술감독님이 수류탄이 차 밖에서 터지면 실제론 차가 같이 터지는 게 아니라 차를 튕겨낸다더군요. 영화 톤과 맞나, 막판까지 고민하다 찍었죠.”

각본‧연출을 겸한 홍원찬 감독(오른쪽)은 ‘추격자’ ‘황해’ 등을 각색한 작가 출신. 10년 전 현재의 제작사 의뢰로 태국에 다녀와 썼던 이번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까지 하게 됐다 그는 첫 답사 당시 태국 반정부 시위로 불타고 폐쇄된 방콕 시내의 인상이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각본‧연출을 겸한 홍원찬 감독(오른쪽)은 ‘추격자’ ‘황해’ 등을 각색한 작가 출신. 10년 전 현재의 제작사 의뢰로 태국에 다녀와 썼던 이번 시나리오를 직접 연출까지 하게 됐다 그는 첫 답사 당시 태국 반정부 시위로 불타고 폐쇄된 방콕 시내의 인상이 영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했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하드보일드 액션이지만 잔혹한 순간을 직접 보여주지 않아 같은 장르물에 비해 잔인하단 느낌은 덜 드는 편.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왔던 관람등급을 15세 관람가로 하향 조정하기 위해 장면을 잘라낸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홍원찬 감독은 “애초에 가학적인 장면을 관객한테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면서 “처음에 ‘청불’이 나와서 오히려 당황했다. 촬영 때부터 칼이 몸에 들어가거나 손가락 자르거나 하는 건 찍지도 않았다. CG로 피의 양, 사운드효과, 편집리듬을 전체적으로 고민해서 (15세에 맞게) 다시 잡았다”고 했다.

“영화적으로 얼마든지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공부하면서 누아르 장르에 대한 자양분을 쌓아왔죠. 저 나름대로 오마주가 있었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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