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급 카페에서 많이 본 이 의자, 누가 만들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 한센이 ‘릴리 체어(Lily Chair)’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한국 작가 5명과 함께하는 ‘무브먼트 인 사일런스 : 불완전한 아름다움’ 전시를 열었다. 사진 프리츠 한센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 한센이 ‘릴리 체어(Lily Chair)’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한국 작가 5명과 함께하는 ‘무브먼트 인 사일런스 : 불완전한 아름다움’ 전시를 열었다. 사진 프리츠 한센

덴마크 가구 브랜드 프리츠 한센이 ‘릴리 체어(Lily Chair)’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한국 공예작가 5명과 함께하는 ‘무브먼트 인 사일런스 : 불완전한 아름다움’ 전시를 열었다.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역작 #백합꽃 닮은 '릴리 체어' 탄생 50주년 기념전 #5명의 한국 작가들과 협업해 재탄생

릴리 체어는 덴마크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아르네 에밀 야콥센의 마지막 역작이다. 기능주의적 건축과 제품 디자인으로 유명한 그는 얇은 합판과 금속을 구부려 자연에서 발견한 유기적인 형태를 구현하는 것을 즐겼다. ‘앤트’ ‘시리즈7’ ‘릴리’는 극단적인 간결성과 기능성을 보여주는 그의 연작으로 릴리는 그 중 마지막 의자 디자인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백합꽃의 유려한 곡선이 모티프다.

프리츠 한센 '릴리 체어' 50주년 기념 전시 ‘무브먼트 인 사일런스: 불완전한 아름다움’ 포스터. 사진 프리츠 한센

프리츠 한센 '릴리 체어' 50주년 기념 전시 ‘무브먼트 인 사일런스: 불완전한 아름다움’ 포스터. 사진 프리츠 한센

올해는 야콥센의 릴리 체어가 탄생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로 프리츠 한센은 처음으로 한국 작가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무·금속·도자 등 각각 다른 소재로 작업하는 5명의 작가가 릴리 체어를 오마주한 작업이다.
전시 기획을 맡은 차정욱씨는 “각각의 다른 소재는 눈으로 보이는 차별점일 뿐,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고요함 속의 작은 움직임’으로 설명되는 한국적인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조형적으로 화려하기보다 실험적인 공예정신을 가진 20~30대 한국 작가들의 젊은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와 작품은 다음과 같다.

백경원, 화이트 체어 White Chair

백경원, 화이트 체어 White Chair. 사진 서정민

백경원, 화이트 체어 White Chair. 사진 서정민

도예가인 백경원 작가는 아르네 야콥센의 자연에 대한 관심에 초점을 맞췄다. 꽃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디자인을 확장시켜 의자 다리를 식물의 줄기로 표현한 것. 의자의 상부는 옥수수 전분을 이용한 3D 프린팅으로 제작하고, 다리 부분은 손성형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도자기로 장식해 줄기와 꽃을 구현했다.

윤라희, 블록 체어 Block Chair

윤라희, 블록 체어 Block Chair. 사진 서정민

윤라희, 블록 체어 Block Chair. 사진 서정민

수작업으로 염색한 푸른 아크릴 조각들을 다시 투명한 블록 속에 담은 윤라희 작가의 블록 체어는 나무라는 평범한 재료를 당시 실험적인 벤딩 기술로 유려한 곡선과 감성으로 풀어낸 야콥센의 정신을 계승한 작품이다. 윤 작가는 “전 세계적으로 없는 기술을 실험한 것으로 야콥센의 혁신적인 정신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색이 푸른 것은 아프리카 백합의 얇고 짙은 파랑 꽃잎을 반영한 것이다.

르동일, 프라이미블 체어 Primeval Chair

르동일, 프라이미블 체어 Primeval Chair. 사진 서정민

르동일, 프라이미블 체어 Primeval Chair. 사진 서정민

르동일 작가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알루미늄을 이용한 원시적인 주물 기법을 사용했다. 거푸집 과정에서 흘러나온 알루미늄 덩어리의 거친 흔적을 그대로 두고, 의자 등받이 부분도 일부 잘라낸 것은 불완전함 속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야콥센의 고뇌를 상징한다. 작가는 “개인적으로 작업하면서 가장 자주 사용하는 키워드가 원시적, 불완전함”이라며 “우리는 늘 완전한 형태의 가구들을 접하지만, 실상 창작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수많은 불완전한 과정들을 거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임정주, 볼륨 체어 Volume Chair

임정주, 볼륨 체어 Volume Chair. 사진 서정민

임정주, 볼륨 체어 Volume Chair. 사진 서정민

나무 소재를 많이 이용하는 임정주 작가는 물푸레나무를 이용해 릴리 체어의 날아갈 듯 가볍고 얇은 형태에 볼륨을 입혔다. 임 작가는 “릴리 체어의 기본적인 모습은 벤딩 기술에서 탄생한 것인데 이는 대량생산에서 가능한 것으로 개인적인 작업에선 구현하기 힘들다”며 “릴리 체어의 원형을 중심에 두고 내가 해온 작업 스타일대로 확장 가능한 입체 형태를 실험했다”고 설명했다.

재료, 페이퍼 체어 Paper Chair

재료, 페이퍼 체어 Paper Chair. 사진 서정민

재료, 페이퍼 체어 Paper Chair. 사진 서정민

재료는 흙을 다루는 김누리 작가와 펄프를 다루는 오상원 작가가 설립한 스튜디오 이름이다. 두 사람은 야콥센이 자신의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 과정에서 거쳤을 무수한 반복적인 연습과 시도에 초점을 맞췄다. 골격을 세운 후 종이로 죽을 쒀 얇고 고르게 바르고 건조하기를 반복해 의자 형태를 만들고, 여러 번 옻칠을 해서 완성시켰다.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에밀 야콥센의 역작인 '릴리 체어'.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에밀 야콥센의 역작인 '릴리 체어'.

야콥센의 '릴리 체어'는 합판을 구부려 만드는 벤딩 기술이 접목됐다. 합판의 특성상 잘못 구부리면 표면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야콥센 생전에는 팔걸이까지 벤딩 기술로 구현하진 못했다. 사진은 프리츠 한센이 릴리 체어 탄생 50주년을 맞아 발전된 벤딩 기술로 팔걸이까지 합판 소재로 제작한 것이다. 사진 프리츠 한센

야콥센의 '릴리 체어'는 합판을 구부려 만드는 벤딩 기술이 접목됐다. 합판의 특성상 잘못 구부리면 표면이 갈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야콥센 생전에는 팔걸이까지 벤딩 기술로 구현하진 못했다. 사진은 프리츠 한센이 릴리 체어 탄생 50주년을 맞아 발전된 벤딩 기술로 팔걸이까지 합판 소재로 제작한 것이다. 사진 프리츠 한센

한편, 프리츠 한센은 릴리 체어 50주년을 기념해 팔걸이를 단 ‘월넛 베니어 릴리 체어’를 출시했다. 야콥센 생전에 가죽 소재로는 만들어진 적이 있지만 합판 소재로는 처음 제작된 것이다. 합판 소재의 특성상 팔걸이의 곡선을 완벽히 구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구부릴수록 표면에 금이 갈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합판 팔걸이 버전은 출시된 적이 없다. 하지만 프리츠 한센은 이런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수려한 유선형의 형태와 정교한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버전을 완성시켰다.
전시는 8월 8일까지 모노하 성수에서 계속 된다.

글=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프리츠 한센, 서정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