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적으로 해온 서울시의회 의장단 선출 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서울시의회 소속 의원이 의장단 선출 과정에서의 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한 데 이어 한 보수 성향 시민단체는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과 서울시의회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권수정 의원, 의장단 ‘교황식 선출’ 비판 #의회 “관례대로 해오던 방식, 문제 없어” #“후보 등록, 정견 발표 생략 문제” 지적도
지난 6월 25일 서울시의회는 제10대 후반기 서울시의회 의장에 김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선출했다. 의장 선거에는 시의회 명부에 등록된 재적의원 110명 가운데 105명이 참여했으며 김 의원은 99표를 얻어 의장 자리에 올랐다. 부의장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기덕·김광수 의원이 당선됐다. 선출일 이틀 전 더불어민주당이 경선을 열고 내부적으로 확정한 후보들이다.
이후 한 달여가 흐른 지난 24일 권수정 정의당 서울시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과정에 부정·불법행위가 있었다며 의장단 선출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의회 의장단 선거는 특정 후보가 출마 의사를 밝히고 선호 후보에게 투표하는 게 아니라 모든 의원을 후보군으로 두고 투표 참여자가 가장 적합한 의원의 이름을 직접 적어내는 방식으로 한다. 이른바 ‘교황 선출식’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권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기표소 안 정면에 모든 의원의 이름이 써진 종이가 붙어 있었는데 더불어민주당에서 사전에 의장·부의장으로 결정한 의원의 이름만 굵게 표시돼 있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정 후보에게 투표를 유도하는 행위라는 주장이었다. 또 내정된 의원이 선거가 진행되는 본회의장 안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며 명백한 부정행위라고 비판했다.
지난 26일에는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김인호 의장과 이창학 서울시의회 사무처장, 김희갑 서울시의회 의사담당관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대책위 측은 “김 의장이 투표가 진행되는 중 지지를 호소하는 등 불법 선거행위를 했으며 이 사무처장과 김 담당관은 이를 묵과하고 의장단 선출이 무기명 비밀투표임에도 기표소 안에 특정인 이름을 굵게 표시한 용지를 부착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고발당한 김 의장과 서울시의회 측은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해오던 방식이라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김 의장은 “이름에 굵은 표시가 돼 있는지 사전에 몰랐다”며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뽑혀 내정됐다는 표시를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당별 서울시의회 의원 수는 더불어민주당 102명, 미래통합당 6명, 정의당 1명, 민생당 1명이다. 의원 10명 이상일 때 꾸릴 수 있는 교섭단체는 더불어민주당이 유일하다. 의장단 선출 시 교섭단체에서 먼저 경선을 통해 후보를 내정하고 대외적으로 결과를 알린다.
이창학 사무처장은 “어떤 의원이 교섭단체에서 후보자로 정해졌다는 것을 안내 차원에서 표시한 것이지 투표 유도 행위가 아니다”며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꼭 내정자 이름에 표시할 필요가 있는지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의장단 선거의 불법 여부를 판단할 기준과 관리기구가 불명확해 의회 내부 다툼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은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원 선거에 한정돼 시의회 의장단 투표 부정 의혹을 선거법으로 의율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 사무처장은 “지방자치법에 무기명 투표를 한다는 규정만 있지 의회 내부에도 구체적 지침이 없어 관행이나 선례를 참고해왔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2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초등학교 선거에서도 다 아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다. 2018년 전반기 의장단 선출에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해 시정하겠다는 답을 받았지만 또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권 의원은 중앙선관위를 향해서도 “포괄적으로 선거 행위에 관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며 “서울시의회 의사팀에 대한 서울시 감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나아가 피선거권을 침해당한 데 대한 민사소송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의장단의 교황식 선출 방식은 일부 다른 지방 의회에서도 갈등의 원인이 돼왔다. 이때문에 선출 방식을 바꾼 곳도 있지만 관례처럼 해오던 방식인데 문제를 제기하는 게 새삼스럽다는 반론도 있다.
서울시의회 한 의원은 “관행처럼 해오던 것은 맞지만 자유로운 후보 등록, 후보자의 정견 발표 같은 일련의 과정이 생략되는 것은 문제”라며 “의원 한 명 한 명이 대의기관인데 당론으로 누구를 정해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