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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세상에도 여백 원하는 게 사람" 북유럽 1위 오디오북 스토리텔 CEO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웨덴 오디오북 서비스 '스토리텔' CEO 요나스 텔랜더 인터뷰

'영상의 시대'다. 이동 중에도 넷플릭스 같은 OTT(실시간 동영상 서비스)를 초고화질로 즐기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누구나 영상을 찍어 올려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다.

이렇게 비디오가 주인공인 시대지만, 음성 기반 새로운 서비스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책을 귀로 듣는 오디오북과 오디오 방송(팟캐스트), 심지어 오디오로 여행하는 오디오 투어 상품도 나왔다. 특히 코로나19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디오북 시장이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네이버 '오디오 클립', 오디오북 구독 서비스 '윌라' 같은 서비스가 인기다.

스웨덴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오디오북 서비스 '스토리텔'도 지난해 11월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20개국에서 구독자 110만명을 보유한 스토리텔은 세계 최대 오디오북 서비스인 아마존의 '오더블'과 맞먹는 서비스 규모를 자랑한다. 보유하고 있는 오디오북 콘텐트만 40만권이 넘는다. 스토리텔은 2005년에 서비스를 시작해 세계 최고(最古) 오디오북 서비스로도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 이미 잘하고 있는데 왜 한국에까지 진출한걸까. 스토리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요나스 텔랜더를 지난달 30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코로나19로 재택 근무 중인 텔랜더는 스톡홀롬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요나스 텔랜더 스토리텔 창업자 겸 CEO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에서는 소설 같은 장르는 종이책과 오디오북이 비슷한 분량으로 팔린다"며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오디오북 시장은 매년 50%씩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선영 기자

요나스 텔랜더 스토리텔 창업자 겸 CEO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웨덴에서는 소설 같은 장르는 종이책과 오디오북이 비슷한 분량으로 팔린다"며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오디오북 시장은 매년 50%씩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선영 기자

"사람들은 상상력·창의력을 위한 여백 필요로 해"

넷플릭스 등 영상 서비스가 약진 중인데 스토리텔은 어떻게 계속 성장할 수 있었을까. 텔랜더는 "사람들의 틈새 시간을 차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두 서비스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라고 볼 수 있다"며 "예전에는 자기 전 책을 읽는게 흔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침실에도 벽걸이 TV가 있지 않나"라고 설명했다.

텔랜더는 "그러나 사람들은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어느 정도 빈 공간을 남겨두려는 경향이 있다"며 "너무 많은 정보보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여기에 오디오가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오디오북은 '눈이 자유로운(eye-free)' 경험을 선사해준다. 출근 중에 혹은 운동을 하면서도 콘텐트를 계속 소비할 수 있다. 텔랜더는 "인생에서 많은 일들이 내가 뛰고 있거나 회사로 출근할 때 일어난다"며 "귀로 스토리텔링을 접하고 책을 익힐 수 있다는 것은 훌륭한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몇 년새 오디오북 서비스의 급성장엔 스마트폰 영향이 크다. 스토리텔도 스마트폰 대중화 이전까지 힘든 시기를 견뎌야 했다. 사업 자금이 부족했던 텔랜더는 2009년 스웨덴의 공영방송 SV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용의 둥지'에 나가기도 했다. 그는 스토리텔 사업 아이템으로 이 프로그램에서 100만 크로나(약 1억3000만원)를 획득하기도 했다.

스토리텔 창업자 겸 CEO 요나스 텔랜더는 "오디오가 진화하니 출판 시장도 바뀌었다"며 "스웨덴에서는 이제 소설 장르는 종이책과 오디오북이 비슷한 비중으로 팔린다"고 설명했다. [스토리텔]

스토리텔 창업자 겸 CEO 요나스 텔랜더는 "오디오가 진화하니 출판 시장도 바뀌었다"며 "스웨덴에서는 이제 소설 장르는 종이책과 오디오북이 비슷한 비중으로 팔린다"고 설명했다. [스토리텔]

"서비스를 시작했던 15년 전에는 오디오를 배포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너무 일렀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손과 눈으로 하던 일을 목소리로 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의 인공지능(AI) 음성 인식 서비스 '시리'가 대표적이다. 오디오가 진화하니 출판 시장도 바뀌었다. 스웨덴에서는 이제 소설 장르는 종이책과 오디오북이 비슷한 비중으로 팔린다. 국가마다 다르겠지만 오디오북 시장은 매년 50%씩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 책부터 존 볼튼 회고록까지

북유럽 오디오북 시장 1위인 스토리텔은 진출 국가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현재 서비스하고 있는 언어는 총 25가지로, 아시아 지역에서는 인도, 싱가포르에 이어서 한국에 세 번째로 진출했다.

스토리텔은 지난해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미디어창비·길벗·다산 등 국내 주요 출판사들과 먼저 계약을 맺었다. 한국어 오디오북 콘텐트를 집중적으로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에는 박완서 작가의 타계 9주기를 맞아 그의 장편 전집을 국내 최초로 오디오북으로 내놓기도 했다. 한국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전략이었다.

스토리텔에서는 글로벌 서비스의 장점을 살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의 책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도 영어 오디오북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영어 교육에 열정적인 한국 학부모 특성을 감안해 영어 동화책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해 아마존과 겨뤄볼 생각은 없을까.
"아마존은 미국 출판사들과 이미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는 좀 더 큰 판을 그려볼 생각이다. 오디오북 시장은 여전히 매우 초기 단계라고 생각한다. 출판사와 작가들을 더욱 잘 설득해 미국 시장도 점차 노려볼 것이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배우들도 섭외 중이다. 오디오북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다."

스토리텔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로 유명한 '스포티파이'와 함께 스웨덴이 낳은 '국민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2018년 12월 유럽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더라도 기업공개(IPO)를 하면 더이상 '스타트업'은 아니다. 그럼에도 텔랜더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정신, 분위기는 여전히 스타트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스타트업다운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을 앞으로도 계속 발휘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스토리텔 모습. 스토리텔은 지난해 11월 한국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출시했다. [스토리텔]

국내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스토리텔 모습. 스토리텔은 지난해 11월 한국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출시했다. [스토리텔]

스웨덴은 전세계에서도 스타트업 생태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한 나라로 꼽힌다. 텔랜더는 "스웨덴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책임지고 스스로 신뢰할 기회를 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특히 기업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자주 묻지 않고 결과를 기다릴줄 아는게 미덕으로 꼽힌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웨덴 스타트업은 정부가 강한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스타트업 환경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정부는 오래 전부터 컴퓨터·인터넷 산업에 투자를 많이 했다. 비록 20년 전 밀레니엄 시대의 흥망성쇠가 있었지만 그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모바일 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모바일 시대의 '2세대 기업가'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하선영 기자·김지혜 리서처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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