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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상연 논설위원이 간다

“9월 정기국회 전 원구성 11 대 7로 정상화되지 않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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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연
최상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지각 개원식 신기록 만든 21대 국회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선출된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5일 21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선출된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5일 21대 국회 첫 본회의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실상 끝났는데 그렇다고 아주 끝난 것도 아닌 게 지금의 어수선한 21대 국회 원구성이다. 새롭게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의장단과 상임위원장을 뽑고 상임위와 특위 구성원을 결정하는 게 원구성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7개 상임위를 독식했지만 아직 정보위원장은 남겨뒀다. 국회법상 정보위 위원은 ‘국회의장이 부의장 및 교섭단체 대표와 협의해 선임한다’고 돼 있는데 미래통합당이 야당 몫 부의장 후보를 추천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어서다.

‘후반기 야당 법사위원장’이 관건 #여당은 ‘차기 지도부가 결정할 몫’ #야당선 ‘대선 탓에 완력 폭주’ 의심 #여당만의 의장단 구성은 어려울듯

정보위는 국정원을 소관기관으로 두고 있다. 국정원장으로 내정된 박지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절차가 27일까지는 마무리돼야 한다. 일단 청문 일정은 그대로 진행될 거라고 보는 전망이 많다. 통합당이 이미 정보위원 명단을 제출한 탓에 정보위원장을 선출하는 등의 정보위 구성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18개 상임위원장 전체를 여당이 독식하는 구조가 그냥 굳어진 건 아니란 얘기도 있다. 법사위원장을 놓고 벌어지는 여야 간 힘겨루기가 재협상으로 풀려나갈 거란 기대 섞인 관측이다.

얼마 전까지 국회 사무총장이었던 유인태 전 의원도 그런 쪽이다. 그에게 물었다.

유인태

유인태

원구성은 사실상 끝난 것인가.
“그런 건 아니다. 지금 원구성을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개원식을 못해 국회의원 선서도 하지 않은 의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나.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건 일단 추경안 통과를 위한 임시조치다. 상임위원장 11 대 7로의 원구성 정상화 협상이 다시 이뤄질 거다. 또 그래야만 한다.”
부의장만 선임하면 원구성은 마무리되는 것 아닌가.
“지금 상황에서 민주당이 야당 몫 부의장까지 차지할 순 없다. 그렇다고 부의장을 비교섭단체에 줄 수도 없다. 어떻게든 통합당이 맡도록 해야 한다.”
부의장 문제는 법사위원장과 연결돼 있는데 여야가 타협점을 찾지 못했지 않나.
“법사위가 그동안 잘못 운영돼 온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법사위가 모든 장관을 불러 놓고 현안 질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월권이고 몰상식한 일이다. 제도 개선을 하고 후반기 국회선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넘기는 정도에서 서로 명분을 찾을 수 있다. 어쨌든 지금처럼 국회가 굴러가진 않을 테고, 9월 정기국회 전엔 정상화 협상이 타결될 거다.”

이런 목소리가 여당 내에서도 꽤 많다. 실제로 야당 몫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선임할 땐 ‘임시직’이란 사실을 위원장들에게 거듭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원구성 재협상을 놓고 여야 간엔 어떤 물밑 대화나 시도도 없다고 한다. 과거 원구성 협상 전례와는 다르게 법대로 모든 상임위원장을 여당이 맡아야 한다는 민주당 입장과 법사위원장만큼은 관례대로 야당이 맡아야 한다는 통합당 주장이 끝없이 부딪치는 중이다. 쉽게 결판날 문제가 아니다.

‘법대로’와 ‘관행대로’만 놓고 보면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엔 법보다 관행에 따라 운영된 게 우리 국회였다. 1988년 개원한 13대 국회부터 의석수 비율에 따라 상임위를 배분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 여당인 민정당이 125석을 얻는 데 그쳐 처음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 지형이 만들어진 영향이 있다. 그 이전엔 다수결 원칙이란 법대로 상임위원장을 거의 모두 여당이 독식했다.

체계와 자구 심사권을 가진 법사위원장을 야당 몫으로 하는 건 비교적 늦게 생겨난 관행이다. 법사위는 15대 국회 전반기까지만 해도 여당 차지였다. 1997년 대선 패배로 야당이 된 신한국당이 여당 지위는 잃었지만 제1당이란 명분으로 후반기 원구성에서 법사위를 고집해 ‘법사위=여당 몫’이란 공식이 깨졌다. 그렇다고 금과옥조도 아니어서 20대 국회 전반기엔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법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래도 이때를 제외하면 야당 몫이 관행이다.

문제는 176석 거대 여당과 103석에 불과한 제1야당이 힘을 겨루게 되는 흔치 않은 국회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다수결 원칙 아래 절대 강자지만 통합당은 관행과 여론 외엔 기댈 곳이 없는 무기력한 약자다. 법사위가 비록 법안이 본회의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거치는 중요한 상임위이고 설사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갖고 있어도 초거대 여당이 숫자로 법안을 처리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패스트트랙에 올리면 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절대 내줄 수 없다’고 한다.

통합당 부의장에 내정됐지만 거부한 정진석 의원에게 물었다.

정진석

정진석

여야가 왜 이토록 법사위원장에 집착하나.
“야당은 민주당 견제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고, 여당은 대통령 퇴임 후 안전판을 확보하겠다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후반기 원구성은 대선 이후 시작된다. 후반기 법사위원장조차 약속할 수 없다는 배경엔 퇴임 후 터져 나올지 모르는 권력형 비리 사건에 두려움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원구성 재협상 가능성은 없을 거란 뜻인가.
“국회란 늘 대화와 타협이 있는 곳이다. 재협상이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반기든 후반기든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양보해야 야당에게 명분이 생기는데 민주당이 압도적인 숫자로 그냥 밀어붙이고만 있으니 대화의 접점이 생길 수 없다.”
야당 몫 부의장은 누가 맡게 될까.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맡을 수 없다. 단일대오 투쟁이다. 전대미문의 폭거가 되겠지만 여당만으로 꾸려질지도 모르겠다. 민주화를 입에 올렸던 민주화 참칭 세력이 독선으로 무장해 독식을 맛본 뒤 독주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결국 독재의 길로 들어서는 참이다.”

원구성 법정 시한 지킨 경우는 없고, 한두 달 협상 거쳐 나눈 게 국회 관행

법대로면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 시한을 일주일 넘겼다. 국회법이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집회일로부터 3일 이내에 실시한다’고 규정해 법정 시한은 8일이었다. 이런 시한을 정한 건 1994년 14대 국회부터인데 15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법정시한 내에 원구성을 완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알짜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정당 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는 데다 여야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원구성이 협상 수단으로 전락해 국회 공백 사태가 2년마다 되풀이됐다.

미국 하원은 의회 의장과 상임위원장 임기가 국회의원 임기와 동일해 임기 중반에도 원구성을 다시 할 필요가 없다. 다수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점하는 관행이 확립돼 이를 둘러싼 갈등 소지도 없다. 임기 개시 후 처음 소집되는 회의에서 의장과 상임위원장을 뽑고 위원 배정까지 마쳐 원구성은 누가 봐도 예상대로 선명하다. 하지만 우린 원내교섭단체 간에 원구성을 협상하는 게 관행이다.

우리 국회도 6대부터 12대 국회까지는 승자독식 원칙에 따라 의장직과 상임위원장직을 다수당이 독점했다. 당연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13대 이후 정당 간 협상을 통한 원구성 관행이 굳어졌다. 특히 1992년 출범한 14대 국회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실시 시기를 놓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원구성에 무려 125일이나 걸렸다.

대략 전반기 원구성엔 평균 50일 이상, 후반기 원구성엔 30일 이상이 필요했다. 그나마 국회 임기 후반부엔 전반기에 결정된 원구성의 큰 틀이 그대로 승계됐기 때문이다. 국회법에 총선 후 최초의 임시회 개최 시기를 명시한 건 1988년 5월부터지만 이것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1998년 15대 국회 후반기엔 김종필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을 둘러싼 여야 간 냉전이 길어져 65일간이나 국회의장 공석 사태가 빚어졌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총선 후 첫 집회일부터 원구성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국회는 18대 국회였다. 2008년 7월 10일 본회의를 열어 김형오 국회의장을 뽑은 18대 국회는 같은 해 8월 26일에야 원구성을 완료했다. 임기 시작일로부터 89일, 국회 개원일로부터 47일이 걸렸다. 한·미 쇠고기협정 파동에 따른 촛불집회 정국으로 여야 대립이 장기화했기 때문이다. 국회 공백이 길어지자 시민단체에선 ‘의원 세비 반납 소송’을 제기하고 당시 한나라당 초선 의원 33명은 6월 세비를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16일 개원식에 합의한 21대 국회는 1987년 개헌 이후 18대 국회가 세운 지연 기록인 2008년 7월 11일을 넘어서 지각 개원식 신기록을 세웠다.

최상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