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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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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청년 장준하는 일본군에서 탈출해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다. 그는 임시정부에 모인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 분열과 암투를 목도하고 크게 실망했다. 일치단결해 일본군에 저항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환영 모임에서 이렇게 고함을 쳤다. “지금 이곳의 실상을 알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을. 지금이라도 일본군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들의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이곳부터 폭격해버리겠다.” 장준하는 피를 토하듯 울부짖으며 통곡했다. 김구, 신익희 선생의 간곡한 만류로 그는 겨우 격앙된 마음을 억눌렀다.

박 시장, 백 장군 장례식 논란은 #21세기판 조선 시대 예송 논쟁 #오늘의 잣대로 역사를 재단해선 #안 된다는 김용운 선생의 충고

한 달 반 전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김용운 선생이 죽기 직전 출간한 마지막 저서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에서 소개한 일화다. 수학자로 출발해 철학과 언어학, 역사학을 거쳐 원형 사관을 정립한 역사철학자로 삶을 마감한 그는 원리주의적 사고와 함께 분열성과 충동성을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원형)에 내재한 특성으로 꼽았다. ‘한국인 하나는 일본인 3명을 이길 수 있지만, 한국인 10명은 일본인 3명을 못 당한다’는 말이 단순히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한국인을 비하하기 위해 만든 선전 문구만은 아니란 얘기다.

주자학 원리주의에 빠진 사림파와 훈구파의 당파 싸움으로 500년을 지새운 조선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우리 민족은 분열을 계속해 왔다. 일제의 식민 통치로 항일과 친일로 갈라졌고, 해방 후에는 국토와 민족이 둘로 쪼개졌다. 반일과 친일이 가로축이 되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세로축이 되어 조선 시대의 사색당파가 재등장한 꼴이 되었다는 것이 김용운 선생의 지적이다. 툭하면 진보와 보수, 친북과 반북, 친일과 반일, 친미와 반미, 친중과 반중으로 갈라져 광화문 광장에서 세 대결을 벌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갑작스러운 자살로 생을 끝낸 박원순 서울시장의 장례식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또 분열했다. 인권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 행정가로서 남긴 공적을 감안하면 닷새간의 서울특별시장(葬)을 이해할 수 있다는 쪽과 그의 자살과 여비서 성추행 의혹의 연관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인 만큼 피해 호소 여성을 배려해 가족장으로 사흘 만에 조용히 끝냈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라졌다.

박 시장의 자살로 법적으로 피해 호소 인의 고소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박 시장이 의혹을 무덤 속으로 끌어안고 감에 따라 실체적 진실은 묻히게 됐다. 법적 구제는 고사하고, 박 시장을 죽게 했다는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릴 피해 호소 여성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대대적인 장례식과 곳곳에 걸린 민주당의 추모 현수막 자체가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모든 인간에게는 공도 있고, 과도 있다. 저울에 올려놓고 정확하게 공과를 계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인간의 오만이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고 인정하면서 망자(亡者)를 추모하는 것이 이성적 태도일 것이다. 과보다 공이 크니까 5일장이 맞고, 공보다 과가 많으니 3일장이 맞다고 우기며 다투는 것은 복상(服喪) 기간을 놓고 사생 결단의 싸움을 벌인 조선 시대 예송(禮訟) 논쟁을 21세기에 되풀이하는 꼴이다.

박 시장이 숨진 바로 다음 날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백선엽 장군의 장례를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때 백 장군이 세운 공은 공대로, 일제 치하에서의 과는 과대로 봐주면 그만이다. 공 때문에 과가 묻혀서도 안 되지만, 과 때문에 공이 묻혀서도 안 된다. 정해진 절차와 규정이 있음에도 전쟁 영웅이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장으로, 서울 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쪽이나 친일 행적이 있는 사람을 어떻게 국립현충원에 모실 수 있느냐고 따지는 쪽이나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정치권력이 역사의 정의를 결정한다면 정치 지형이 바뀔 때마다 정의는 뒤집힐 것이고, 그때마다 백 장군의 묘소는 파묘(破墓)와 이장(移葬)을 반복할 것 아닌가.

그래서 김용운 선생은 오늘의 잣대로 역사를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시대의 관점과 정치, 외교, 사상, 문화적 배경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해야 비교적 오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원리주의에 함몰돼 역사 바로 세우기와 적폐 청산을 구실로 분열하고 대립한다면 진보, 보수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지난 정권의 잘못을 욕하면서 답습하는 내로남불식 정치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권을 교체해도 정권 고유의 철학이 없다 보니 고작 내놓는다는 것이 과장된 적폐 청산이나 반일 구호뿐이다. 국가의 미래보다 구악 청산을 내세워 보복에만 신경 쓰는 것은 미라 찾으러 갔다 미라가 되는 격으로, 오히려 적폐를 증폭시켜 스스로 청산의 대상이 되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할 뿐이다.” 압도적 의석수에 기대어 역사와 민의의 해석권을 독점한 심판관을 자처하고 있는 청와대와 민주당에 주는 김용운 선생의 마지막 충고로 들린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