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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알바트로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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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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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저 장난으로/커다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네/(…)//그자들이 갑판 위로 끌어내리자마자/이 창공의 왕자들은, 어색하고 창피하여/가엾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노라도 끄는 양 옆구리에 늘어뜨리네//(…)//시인도 그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 구름의 왕자/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땅 위의 야유 소리 한가운데로 쫓겨나선/그 거인의 날개가 도리어 발걸음을 방해하네. (시집 『악의 꽃』 중, 황현산 옮김, 민음사, 2016년)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1859년 발표한 시 ‘알바트로스’다. 그는 1842년 인도양 항해 도중 선원에게 붙잡혀 학대받던 알바트로스를 목격했다. 창공에서는 왕자이지만, 지상에 내려앉는 순간 바보가 된다. 크고 흰 날개는 노처럼 바닥에 끌린다. 시인은 자신의 처지를 알바트로스에 빗댔다. 큰 종(種)은 양 날개를 펼치면 그 폭이 4m 가까이 된다. 망망대해에서 지내다가 번식기에만 육지에 내린다. 날갯짓 대신 상승기류를 이용해 활강한다. 그토록이나 오랜 시간 뭍에 내리지 않고 창공에 떠있을 수 있는 이유다.

알바트로스가 뉴스에 나온다면, 십중팔구 골프 소식이다. 11일 이정은 선수가 한국 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아이에스동서 부산오픈 1라운드 5번 홀(파5)에서 알바트로스를 기록했다. 골프는 홀마다 기준 타수가 있다. 그보다 하나 적게 치면 버디, 둘은 이글, 셋이 알바트로스다. 이정은은 두 번 만에 넣었다. 파4 홀이라면 홀인원이 알바트로스다. 파5 홀 홀인원도 가능할까. 기준 타수보다 네 타를 줄이는 게 된다. 별칭도 있는데, 콘도르다.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기록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지금까지 네 번 있었다.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는 알바트로스 등 해양 조류 배설물이 산호초와 결합해 생성된 인광석 부국이었다. 섬 전체가 비료 원료인 인광석에 뒤덮여 손쉽게 채굴할 수 있었다. 1970~80년대 이를 팔아 부자가 됐다. 인광석은 고갈됐고, 지금은 주변 국가에 기대어 산다. 한창때 3만 달러였던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6년 2500달러로 줄었다. 평생 한 번도 어렵다는 알바트로스를 기록한 이정은은 2라운드에서 컷 탈락했다. 호사(好事)에는 다마(多魔)라고 했던가. 좋은 일이 생기거든 그다음을 경계해야 하는 게 세상 지혜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