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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튬 복장 직접 입어봐라"…번화가 곳곳 성인용품샵 성희롱 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편집숍 형태로 운영되는 성인용품점.※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편집숍 형태로 운영되는 성인용품점.※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서울 광진구의 한 성인용품점엔 최근 '남성 출입 금지'란 문구가 나붙었다. 매출 타격을 감수하고서라도 이제까지 직원들이 겪어온 성희롱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주인의 판단에서다. 최근 성인용품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판매점도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종사자들은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겐 그래도 된다"는 식인 고객의 성희롱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직원 보호 위해 ‘남성출입금지’ 결정

9일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구의역 근처 한 성인용품점에서 남성 A씨가 직원에게 성인용품을 들이밀며 '체험'을 집요하게 요구하다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해당 성인용품점 대표 B씨에 따르면 A씨는 직원에게 "제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냐"고 끈질기게 요청했다. 직원은 "직접 테스트해보시면 된다"고 했지만 A씨는 재차 '체험'을 직원에게 요구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두려움을 느낀 직원은 A씨를 피해 창고로 숨었다. 경찰 출동 이후 B씨는 "오해다.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고만 변명했다.

광진경찰서는 A씨와 B씨를 차례로 불러 조사했으나 사건은 금방 종결됐다. '신체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 측은 "CCTV를 통해 확인한 결과 신체 접촉이 없었기 때문에 입건 대상이 아니다"라며 "단순히 언어로 희롱하는 경우 처벌이 어렵다"고 말했다. B씨는 "피해를 봤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무런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난다"며 "결국 매출 손해를 감수하고 남성의 출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지난 3년간 해당 매장을 운영해왔지만, 직원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로 '남성 출입 금지'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성희롱을 목적으로 오는 남성들은) 주로 손님이 가장 적은 시간인 월~화 오픈 직후에 맞춰서 오는 경우가 많다"며 "처음엔 매장에 들어오지 않고 지켜보다가 여자 직원 혼자 있다고 파악되면 들어와 희롱을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혼자 운영하는 소규모 매장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난 5일 마포구 소품 매장에선 30대 후반 남성이 사장 C씨가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와 음란행위를 하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C씨는 그 여파로 현재 손님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막고, 한 팀씩 차례로 입장을 허용하는 식으로 매장을 운영 중이다.

“코스튬 입고 나와보라”는 요구도

최근엔 성인용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 잡으면서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핵심 번화가에서도 성인용품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타업종에 비해 특성상 '성희롱'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8개 체인점으로 운영되는 한 성인용품점의 직원은 "'남자라 잘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노골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여기서 일하니까 잘 알지 않냐, 어떻게 좋냐면서 집요하게 후기를 물어본다"고 토로했다.

B씨 또한 "가게에 찾는 물건이 없다며 핸드폰으로 제품 사진을 보여준다면서 앨범에 가득 찬 여성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며 "코스튬 안내 도중 직원에게 '입고 나와보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제품 자체가 성적인 유희를 위한 도구다 보니 본인들의 욕망 해소를 위해 도구를 판매한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상업적인 거래랑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피해자가 공포를 느꼈다거나 지속해서 성희롱을 하는 손님에 대해서는 경범이라도 법을 적용하고 책임을 물을 순 있다"고 설명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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