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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쿠션 첫 맞짱…당구 여제가 여신을 꺾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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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당구 여제’ 김가영(오른쪽)이 ‘당구 여신’ 차유람을 물리쳤다. 포켓볼에서 스리쿠션으로 전향 후 첫 대결에서다. 두 사람은 지난해 프로인 스리쿠션으로 전향했다. [사진 PBA]

‘당구 여제’ 김가영(오른쪽)이 ‘당구 여신’ 차유람을 물리쳤다. 포켓볼에서 스리쿠션으로 전향 후 첫 대결에서다. 두 사람은 지난해 프로인 스리쿠션으로 전향했다. [사진 PBA]

“저도 독한 거로는 좀 하는데, 가영 언니는 진짜 독해요, 독해. 어제 집 근처 당구장에서 연습하는데, 언니가 왔더라고요.”(차유람)

포켓볼서 종목 바꾼 라이벌 #김, 첫 세트 내줬지만 2-1 역전승 #김 “외모 열등감, 지지 않으려 용써” #차 “언니는 따라잡고 싶은 자극제”

“얘가 집에 안 가서 새벽까지 (연습) 했다니까요. 아기를 둘이나 키우는데, 정신력 하나는 끝내줘요.”(김가영)

‘당구 여제’ 김가영(37·신한금융투자)과 ‘당구 여신’ 차유람(33·웰컴저축은행)이 격돌했다. 이번에는 포켓볼이 아닌 스리쿠션이다. 승부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2000~2010년대 포켓볼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김가영이 세계선수권을 세 차례, 차유람은 실내무도아시안게임을 두 차례 제패했다.

지난해 프로당구 시대가 열리자, 두 사람 모두 스리쿠션으로 종목을 바꿨다. 전향 후 첫 맞대결이 펼쳐졌다. 8일 서울 그랜드 워커힐에서 열린 PBA(프로당구)-LPBA 투어 SK렌터카 챔피언십 16강전에서다. 3전 2승 세트제로, 1·2세트는 11점, 3세트는 9점을 먼저 따면 이기는 방식이다.

경기는 김가영의 세트스코어 2-1 역전승으로 막을 내렸다. 김가영은 1세트 4-7에서 차유람에게 연속 4점을 내줘 기선을 제압당했다. 하지만 김가영은 2세트 5-9에서 연속 6득점 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김가영은 3세트 시작하자마자 6점을 몰아쳤다. 차유람에게 7-6까지 추격을 허용했지만, 결국 9-6으로 마무리했다.

5년 만에 일대일 맞대결을 펼친 차유람(왼쪽)과 김가영. [사진 PBA]

5년 만에 일대일 맞대결을 펼친 차유람(왼쪽)과 김가영. [사진 PBA]

두 사람의 직전 맞대결은 2014년 10월 국내 포켓볼 10볼 결승전이었다. 이번 대회 예선에서 같은 조(4인1조 서바이벌)였지만, 일대일로 맞붙은 건 5년 8개월 만이었다. 두 사람 모두 “포켓볼은 하도 많이 붙어봐서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회전을 거의 주지 않았고 앞돌리기를 구사했다. 간혹 보조 브릿지도 썼다. 포켓볼 하던 시절의 장점도 잘 살렸다. 코로나19로 무관중에 마스크를 쓴 채 경기가 진행됐다. 두 사람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경기 후 먼저 차유람이 “(김가영의) 공 다루는 기술은 여자 선수 중 톱”이라고 칭찬하자, 김가영이 “(차유람은) 연습 때 준비한 걸 100% 발휘하는 선수”라고 화답했다. 차유람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했는데, 그때 언니는 국내 1위였다”고 소개하자, 김가영은 “그때 내 나이가 많은 것 같지만, 중학 3학년 때부터 1위였다”고 받았다.

10, 20대 시절 두 사람은 늘 비교를 당했다. 당구 실력뿐 아니라 외모까지 그랬다. 30대가 돼서도 스리쿠션으로 비교된다.

두 사람은 서로 어떤 존재였을까. 차유람은 “자극제 그 자체, 따라잡고 싶은 존재였다. 솔직히 (김가영이) 없었다면 편했을 거다. 대신 그랬다면 자신을 채찍질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가영은 “(차유람은) 독기 품은 추격자다. 쫓기는 사람은 불안하다. 게다가 예뻤다. 외모를 비교당하면 ‘당구로 이겨야지’ 생각했다. 차유람에게 처음 열등감을 느꼈고, 지지 않으려고 용을 썼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가영은 지난해 12월 LPBA 6차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차유람의 최고 성적은 8강이다. 지난해까지도 1회전에서 줄줄이 탈락했던 차유람인데, 실력이 급성장했다. 맞대결 평균 에버리지는 차유람(0.839)이 김가영(0.750)을 앞선다.

차유람은 “새로운 걸 하려니 과부하가 걸렸다. 15년간 해온 포켓 타법을 장점으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언니와 결승전에서 만나고 싶다. 그게 다음 대회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가영은 “유람이 발전이 빠르다. 나 역시 높은 곳에서 만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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