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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후보자까지 챙긴 비건…文정부 대북정책 드라이브 탐문 나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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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도착해 외교부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도착해 외교부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오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주 지명된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를 면담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직 정식 임명도 안 되고 국회 청문회를 앞둔 후보자를 비건 부장관이 이례적으로 만난 것은 새 외교안보라인의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을 직접 들어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비건 부장관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난 후 "미국은 남북협력을 강력히 지지하며 이게 한반도에서 안정적인 환경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이날 발언은 미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일 뿐, 현 시점은 새 외교안보라인의 대북정책을 탐문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비건 부장관은 9일 오전엔 서훈 신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면담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물론 비건 부장관은 방한 때마다 정보당국 주요 인사와 만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는 한반도 상황과 시기가 미묘하다. 다만,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면담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왼쪽부터) [연합뉴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장관 후보자,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왼쪽부터) [연합뉴스]

최선희·볼턴 작심 비판한 비건…“협상 권한 있는 사람 나와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동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날 오전 외교부에서 이도훈 본부장과 북핵수석대표협의를 마치고 나온 비건 부장관은 취재진 앞에서 한가지 '작심 발언'을 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이 그것이다.

비건 부장관은 “한 가지 지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며 “나는 최선희 부상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 아니다. 존 볼턴 대사(전 보좌관)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지난 2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여러 회담의 결과로 부터 지침을 받는 사람”이라며 “두 인물 다 가능한 것에 대해 창의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옛 사고방식에 갇혀있고 부정적인 것과 불가능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최 부상은 4일 담화를 내고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갖고 우리에게 다가오겠는가 하는 것은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며 “미국이 협상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이날 비건 부장관의 발언은 방한을 앞둔 최 제1부상의 선제공격에 맞대응한 셈이다.

나아가 비건 부장관은 “이번 방한의 목적은 북측과의 접촉에 있지도 않았다”면서 “김 위원장이 협상에 준비가 돼 있고 권한이 있는 사람을 지명한다면, 그들은 바로 그 때 우리가 (협상에 임할)준비가 됐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도 했다. 최 제1부상을 협상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발언이다.

비건 부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그동안 최 제1부상과 존 볼턴 전 보좌관은 북·미 비핵화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인 반면, 자신은 준비가 된 만큼 김 위원장이 새 협상 카운터파트를 임명하면 곧바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왼쪽)과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왼쪽)과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연합뉴스]

비건 부장관이 “볼턴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을 두곤 북·미 대화를 공격하는 워싱턴 장외 세력들에 대한 경고로도 풀이된다. 볼턴 전 보좌관은 최근 회고록을 통해 비건 부장관을 “개인적인 어젠다를 관철시키는 사람”이라고 깎아내렸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와 관련, “비건 부장관이 이번 방한에서 북·미 간 대화의 진전을 지연시키는 이들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내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한·미는 현재 오는 11월 미 대선 이전에 북한을 실질적인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이 방안의 내용 중에 대북 인도적 지원과 제재 완화 관련 내용도 포함됐느냐는 질의에 한 ·미 당국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물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FFVD)'를 논의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발언하고있다. [뉴스1]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발언하고있다. [뉴스1]

트럼프 대통령도 7일(현지시간) 원론적이긴 하지만 김 위원장과의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군불을 땠다. 그는 이날 미국 '그레이 TV'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들(북한)이 만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우리도 물론 그렇게 할 것", "만약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비건 부장관과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제8차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갖고 교착상태에 빠진 방위비분담금 협상과 관련, 한·미는 가급적 조속한 시일 내에 상호 수용 가능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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