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일 '통상 전쟁'으로 번진 과거사 문제…양보 없는 '치킨게임' 되나

중앙일보

입력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통상·무역 전쟁으로 번지면서 양국의 도미노식 대응이 양보 없는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수출 규제에 이은 반덤핑 조사 착수로 양국 간 샅바 싸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비난 수위까지 높아지며 감정까지 상할 대로 상한 모양새다.

일본 정부가 29일 시작한 한국산 탄산칼륨의 덤핑 판매 혐의에 대한 조사가 수출 규제에 이은 보복 조치인지 대해서는 양국 모두 관망하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반덤핑 조사는 업체에서 의뢰할 경우 시작하는 것으로 일본 정부가 자의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면서도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를 우리 입장에서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이미 일본의 반덤핑 조사 착수가 보복적 조치라고 확신한 듯한 대응을 쏟아내고 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30일 "일본이 최근 한국산 탄산칼륨에 대한 덤핑 조사에 착수한 것 역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최근 상황을 '한·일 경제전쟁'으로 표현했다. 전날 김태년 원내대표가 일본이 한국의 G7(주요 7개국) 참여에 반대한 것에 대해 '속 좁은 외교'라고 말한 데 이어 연일 말 폭탄을 던진 것이다.

지난해 11월 정세균 (왼쪽 세번째, 당시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 국무총리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당정청 상황 점검 및 대책위원회 5차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 정세균 (왼쪽 세번째, 당시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 국무총리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당정청 상황 점검 및 대책위원회 5차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보름 전(15일) 한국 정부는 일본산 스테인리스스틸 후판에 반덤핑 관세를 계속 부과키로 결정한 바 있다. 스테인리스스틸 후판은 석유화학, 조선, 강관, 담수, 발전, 반도체 공장 등에서 쓰는 산업용 원자재다. 정부는 입법예고에서 "재심사 결과 해당 물품의 덤핑 수입과 이로 인한 국내산업의 피해가 지속되거나 재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연장 이유를 밝혔다. 일본의 이번 결정이 한국의 반덤핑 관세 연장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듯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시작된 일본의 수출규제 등 보복 조치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한·일 양국은 한 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2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고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1년이 됐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며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강한 경제 길 열었다"고 자신감 내비쳤다. 일본이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을 당시 제기됐던 부정적 전망은 '맞지 않은 전망'이라고 못 박았다.

문 대통령은 이어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생산 차질도 일어나지 않았고,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화를 앞당기고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등 핵심 품목의 안정적 공급체계를 구축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했다. 일본과의 통상전쟁에 있어서 '양보 없는 원칙적 대응 기조'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평가하는 것처럼 수출 규제 등 일본이 취한 조치가 실효성이 없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반드시 취했어야 하는 조치'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실효성은 없었지만, 정치적으로 필요한 조치였다는 평가가 많다"며 "한국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나오는데 일본 정부가 강하게 나가지 않는다는 국민의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경제적 실효성이 없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조치였다는 평가가 많다"고 설명했다.

양국의 입장이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사안을 대하는 일본의 태도도 어른스럽지 못하며, 청와대도 마치 닭싸움을 하듯 대응하고 있다"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