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로나에 찍혔던’ 사진관 사장 “3개월만에 가족사진 손님 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1973년 문을 연 서울 강북구 삼양동 서울스튜디오 나복균 대표가 사진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서울스튜디오]

1973년 문을 연 서울 강북구 삼양동 서울스튜디오 나복균 대표가 사진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서울스튜디오]

서울 강북구 삼양역 앞 서울스튜디오. 1973년에 문을 열어 지난해 서울시 ‘오래 가게’로 선정된 곳이다. 지난 25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스크를 한 나복균 대표가 맞아줬다. 나 대표는 “손님이 오면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안 찍고 머리 안 잘라 #“하루 손님 0명인 날도” #지원금으로 ‘반짝’ 회복 #확진자 속출에 다시 심각 #서울시 생존자금으로 숨통

이곳은 전년과 비교해 월 매출이 절반 정도 줄었다. 3월은 1년 중 매출이 가장 많은 이른바 ‘시즌’이지만 올해는 “일이 없어 놀았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개학이 취소되면서 학생증 사진을 찍는 손님이 거의 없는 데다 돌·결혼식 출장 촬영은 모두 취소돼서다. 많게는 20명 가까이 모이는 가족사진 주문도 ‘거리두기’로 자취를 감췄다.

나 대표는 “여행을 안 가니 여권 사진 안 찍어, 채용을 안 하니 이력서 사진 안 찍어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진업이 정말 큰 타격을 받았다”며 “전 세계적 현상이니 하소연할 곳도, 원망할 곳도 없다. 우리 가족도 손주 돌잔치 장소를 잡아놨다 취소했으니까”라면서 답답해했다. 예상치 못한 영업 부진에 나 대표는 사진학을 전공한 아들 나승보 대표에게 계획보다 일찍 가게를 물려줄 생각이다.

서울 중구 세운상가에 있는 주간다실 야간싸롱 '그린다방' 김시우 대표. [사진 그린다방]

서울 중구 세운상가에 있는 주간다실 야간싸롱 '그린다방' 김시우 대표. [사진 그린다방]

도봉구의 오드리헤어 미용실도 코로나19 전보다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임윤택·양현정 부부는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머리를 자르지 않고, 오래 미용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펌이나 염색도 꺼린다”고 한숨을 쉬었다.

관악구 케이앤씨 숯불바베큐치킨 양하용 대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배달이 많이 늘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경제가 위축돼 매장·배달 손님 모두 줄었다”며 “지역 특성상 건설현장 노동자들이 많이 찾는데 건설 경기가 안 좋으니 배달 주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그나마 나는 수익을 한 명 있는 직원 월급을 주는 데 쓰고 있다.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5개월여.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매출 감소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달 정부가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사정이 조금 나아지는가 했지만 6월 들어 수도권에서 집단 감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오히려 4월보다 매출이 더 줄어든 곳도 있다. 상인들은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그래도 ‘긴급재난지원금 효과’가 떨어질 때쯤 서울시 자영업자 생존자금이 나와 숨통이 좀 트였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 매출액 2억원 미만(지난해 기준)의 영세 소상공인에게 월 70만원씩 2개월 동안 14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30일 접수를 마친 53만5000여 명 중 48만 여명의 심사를 마치고 30만여 명에게 2100여 억원이 지급됐다. 나머지 신청자는 순차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 도봉구 미용실 오드리헤어 임윤택, 양현정 대표. [사진 오드리헤어]

서울 도봉구 미용실 오드리헤어 임윤택, 양현정 대표. [사진 오드리헤어]

나복균 대표는 “지원금을 사진봉투 사고 오래된 간판을 교체하는 데 썼다”며 “더는 버티기 어려운 때 현금을 지원해주니 큰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중구 세운상가의 ‘그린다방’ 자리에 커피·와인 살롱을 차린 청년사업가 김시우 대표는 “코로나19로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때도 있는데, 큰 조건 없이 현금으로 지원하니 탄력적으로 쓸 수 있어 긍정적”이라며 “생존자금이 두 달의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원금을 월세 내는 데 썼다.

역시 지원금을 월세로 쓴 미용실 양 대표는 “남들에게는 소액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 같은 영세 소상공인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며 “도봉구에서 확진자가 나와 매출 회복세가 주춤한 상황에서 짐을 조금 덜었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전체 자영업자 약 57만명 가운데 연 매출액 2억원 미만 등 조건을 충족하는 41만 여명에게 현금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서울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 전체 자영업자 약 57만명 가운데 연 매출액 2억원 미만 등 조건을 충족하는 41만 여명에게 현금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서울시]

서울시가 자영업자 생존자금 수급자 2713명을 조사한 결과 47%는 지원금을 임대료 지급에 쓴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재료비(16%), 인건비(10%)로 썼다. 지원받은 상인 10명 가운데 9명은 생존자금이 사업체 운영에 도움 됐다고 응답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영업자 생존자금이 영업 유지에 실질적 도움을 줬다”며 “자영업자들이 골목경제에 튼튼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체계적 지원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사진관을 가업으로 이어가겠다는 나복균 대표는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돼도 다시 예전처럼 경기가 회복될지 염려되지만 최근 예약 문의가 조금씩 오고 있다”며 “일주일 전 3개월 만에 가족사진 상담을 한 데 이어 오늘도 상담이 있다”면서 서둘러 일어났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