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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력 40년' 대배우 박근형의 골프 스토리

중앙일보

입력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배우 생활만 62년. ‘대배우’ 박근형이 어느새 팔순을 맞았다. 드라마·영화·연극을 통해 수많은 역할을 해온 그에게서는 다양한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카리스마 넘치는 냉철한 대기업 회장이나 정치인,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우리 시대의 아버지 모습도 내재돼있다. 요즘 청년들에게는 ‘국민 할배’로도 불린다. 황혼에 이른 배우들의 좌충우돌 해외 여행기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보여준 모습 때문이다. 여전히 멋스러운 그를 원로 배우가 아닌 청춘 배우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았다.

여든 나이에도 여전히 200m 안팎 샷 날려 #연기처럼 골프에도 '탄탄한 기본' 철학 #'꽃할배' 멤버들, 40년 전엔 골프 모임 멤버 #"남은 인생에도 패기있게 골프 치고 싶어요"

그런 박근형이 인생의 절반을 골프와 함께 한 '베테랑 골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쁜 촬영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가 틈날 때마다 하는 건 골프다. 1980년에 골프를 시작해 구력만 40년이 됐다. 한창 골프를 했을 땐 1주일에 5번이나 필드에 나갔을 정도였다. 최근엔 고향 선후배가 함께 한 골프 모임을 통해서 즐기는 수준으로 치고 있지만 자신의 나이에 맞게 치는 ‘에이지 슈트’를 꿈꿀 만큼 실력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 베스트 스코어는 81타. 요즘은 90대 중반 타수를 기록중이다. 여전히 남성 아마추어 골퍼들이 쓰는 화이트 티에서 드라이브 샷을 평균 180~200m, 멀리 치면 210m까지 친다고 한다. 여전히 힘이 좋아 티샷을 할 때 ‘짝’하는 타구음이 날 정도로 호쾌하게 친다는 게 주변 사람의 전언이다. 홀인원을 기록한 적은 없지만 겨울에 딱딱한 코스에서 이글을 했던 경력이 있다.

박근형을 〈JTBC골프매거진〉 7월호 커버스토리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골프가 인생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듯, 전문 골퍼는 아니어도 인생의 절반을 골프와 함께 해온 박근형의 골프 스토리라면 뭔가 풍성한 게 많을 것 같았다. 박근형은 "고등학교 때 수영 선수를 했다. 운동을 하긴 했지만 배우를 하고 나서는 연극을 하면서 집에만 왔다 갔다 하니까 엄두가 안 났다. 그러다가 1980년부터 동료 배우들과 골프를 시작했다"면서 "골프가 내 인생을 바꿨다. 처음 골프를 했을 때에는 술을 마시고 밤 세워 일하다가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쳤다. 그 때는 아마 내 신체 나이가 70대였을 거다. 골프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오기도 어려웠을 거다. 내 건강을 만들어준 소중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박근형은 처음 골프를 접했을 당시에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인근 덕산골프연습장에서 주로 연습을 했다. 덕산골프연습장에는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KBS 소속 탤런트나 작가 등 방송 관계자들도 많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박근형은 처음 배웠을 땐 드라이브 샷만 300m 이상 펑펑 날리는 장타자였다. 그러나 그는 그때의 골프에 대해 “힘으로만 칠 때였다. 잘 못 배웠을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골프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생겼다. 기본에 충실한 것이었다. 기본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했다간 골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철저하게 기본을 배우고, 어느 정도 된 뒤에 자기 몸에 익히고 기억하는 시간을 줘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름대로의 원칙도 세웠다. 그는 “절대 술을 마시고 골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말했다. “음주를 하고 치면 자기 편한대로 친다. 스윙이 안 된다. 무엇보다 에티켓에서도 실례되는 행위가 많이 나온다”는 게 이유였다. ‘내기 골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돈 1000원이라도 안 하는 게 좋다. 자기와의 싸움에 남과 경쟁하다가 내기까지 붙으면 자존심의 문제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차라리 함께 즐겁게 치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다던지, 그런 정도가 좋다. 공을 잘 못 치더라도 그런 부분만큼은 멀리 하고 몸에 베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숨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털어놨다. 그는 “작가 선생님들 중에 한운사, 조남사 같은 분들이 정치인들과 골프를 했다. 골프를 처음 배우면서 너무 재미있으니까, 글이 안 나왔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쪽 대본’이라는 게 그때 시작됐다”고 말했다. 더 흥미로운 비하인드도 있었다. 알고 보니 박근형이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 함께 친 동료 배우들이 ‘꽃보다 할배’에 함께 했던 ‘꽃할배들’이었다.

이순재, 신구, 백일섭, 박근형. 이렇게 네 배우는 1990년대 초반까지 10년 넘게 골프로 우정을 더 돈독히 다졌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나 넷은 ‘여행 멤버’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꽃할배들’이 됐다. 유럽 여행 중에도 예전에 함께 골프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던 적도 있었단다.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처음 골프를 접했을 당시엔 연습장이 많지 않고, 시설 수준도 낙후돼있었다. 그래도 넷은 기회를 만들어 열심히 골프를 하면서 경쟁했다. 박근형은 “서울 뚝섬에 있던 경마장에 9홀 골프장이 있었다. 거기서 새벽에 티켓 사다놓고 줄서서 기다리고 쳤을 때였다. 참 다들 열심히 재미있게 쳤다. 어떨 땐 하루에 54개 홀을 돈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꽃할배'들의 '꽃중년' 시절 쳤던 골프는 말 그대로 '정석대로'였다. 그는 "공이 어디에 있어도 옮기지 않고 있는 곳에서 그대로 쳐야 했다. 겨울에 땡땡 언 땅에 있든, 길바닥에 있든, 거기서 그냥 무조건 쳐야 했다. 그러니까 아이언이 이빨 빠지고 그랬다"고 웃으며 말했다.

함께 했던 네 명 중 골프 실력이 가장 나았던 사람은 '맏형' 이순재였다고 한다. 박근형은 "이순재 씨는 집중력이 강하신 분이다. 신구 씨는 경쟁력이 세다. 그래서 둘이 따로 만나 시합한 적도 많았다. 둘이서 골프를 하다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우리한테 얘기하고 풀고 그랬다. 그런 반면 백일섭 씨는 '놀자' 주의였다. 그래서 나하고 골프하면서 잘 맞았다"고 말했다. 1990년대 후반 '꽃할배'들과 함께 골프를 한 게 마지막이었다는 박근형은 “기회가 있을지는 몰라도 다시 그런 날이 온다면, 더 재미있게 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박근형은 "연기할 때 느끼는 희열처럼 골프도 희열이 대단하다. 혼자 구렁텅이에 빠졌다가도 잘 될 땐 나만 느낄 수 있는 벅차오름이 있다. 그럴 때 느껴지는 골프의 매력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기본과 원칙을 지켰기에 연기도, 골프도 튼튼하게 다질 수 있었던 그였다. 박근형은 "앞으로 쳐야 3~5년 정도 될 것 같다. 몸을 점점 쓸 수 없을 정도로 가면 어쩌나 하지만, 그렇다고 비참하게 치면 안 된다. 패기있게 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80년대 후반, 골프장에서 본 한 정치인을 떠올렸다.

“새벽에 골프장에서 ‘먼저 지나갑시다’라면서 클럽 3개만 들고 혼자서 치는 한 정치인이 있었어요. 뭔가 여유있게 치는 그 모습이 인상에 깊게 남았어요. 스코어야 뭔 상관이 있겠어요. 계속 걷고 치고, 공을 좇아가고, 좋아서 그렇게까지 치는 모습이 부러웠지요. 늙으면 한 번 저렇게 쳐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같은 환경에선 그렇게 하는 건 어렵겠지요. 그래도 그만큼 골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좀 더 여유있게, 즐겁게 치고 싶어요.”

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대배우 박근형은 구력만 40년 넘은 베테랑 골퍼다. 연기처럼 골프에도 뚜렷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사진 포토그래퍼 신중혁]

※자세한 인터뷰 기사는 〈JTBC골프매거진〉 2020년 7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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