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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잘 그리면 난잡한 여자라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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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2호 21면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은행나무

잊혔던 여성 화가들 재평가 #아버지 역할이 주로 운명 갈라

변두리 박물관 한구석에 걸려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그림들이 저마다 ‘미투’를 외치고 나섰다. 유사 이래 주류 미술사에서 소외되어 온 여성 미술가들이 “여기 나도 있다”는 아우성이다. 주목할 만한 예술성을 지녔음에도 아버지 또는 남편의 이름으로 작품을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여성 미술가 21명을 발굴한 책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해석이 달라지듯, 여성 권력의 기세가 남다른 지금 시대에 마땅한 시도다. 하지만 ‘페미니즘 미술사’라고 편 가르고 싸우자는 얘기는 아니다. 작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주류로 밀려났던 귀한 작품들이 후대에 재평가되면서 뻔한 미술사에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시작은 다소 신파다. 16세기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대리석 조각가 프로페르치아 데 로시는 초기엔 대리석을 구하지 못해 과일 씨앗에 작업을 해야 했다. 후일 실력을 인정받고도 실연의 상처를 표현한 감상적인 작품으로 평가절하 당하고, 뛰어난 인체 데생 실력은 성적으로 난잡한 증거라는 비방을 들었다. 남자 동료들의 부당한 행동에 분노로 맞섰지만, 결국 장벽을 넘지 못하고 무일푼에 흑사병으로 요절하고 말았다.

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체스게임’. 소녀들의 생생한 표정 묘사가 압권이다. [사진 은행나무]

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체스게임’. 소녀들의 생생한 표정 묘사가 압권이다. [사진 은행나무]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 최초의 여성 회원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또 어떤가. 십대에 그림 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하면서도 붓을 꺾지 않았다. 흥미로운 건 대표작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에 대한 해석이다. 성서 속 유디트는 조르조네, 카라바조, 클림트 등 유명 남성화가들에게 한결같이 에로틱한 자태로 타자화됐지만,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억척스러움까지 느껴지는 강인한 여성으로 표현됐다. 그녀의 강인한 화풍에 대해 ‘성폭행 트라우마의 투영이냐 또는 그 유명세를 이용한 노이즈마케팅이냐’라는 상반된 해석은 지금 ‘미투’를 외치고 나선 여성들을 보는 시선과도 흡사하다.

당대에 명성을 떨친 여성 화가도 없진 않았다.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에 오른 몇 안 되는 여성 미술가인 소포니스바 앙귀솔라는 최초로 자화상을 그린 여성으로도 유명한데, 대표작 ‘체스게임’의 생생한 표정묘사는 미켈란젤로가 감탄했을 정도다. 여성 화가로서 최초로 누드화를 그린 라비아나 폰타나도 ‘서유럽 최초의 직업 여성화가’로 기록되며 미술사에 유의미한 업적을 새겼다.

이들의 운명을 가른 건 상당 부분 아버지의 존재다. 앙귀솔라의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알아보고 미켈란젤로에게 보내는 등 최고의 교육을 시켰다. 라비아나의 아버지는 딸의 커리어를 위해 사윗감으로 가정적이되 재능 없는 화가를 골랐다.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에서도 성 역할이 뒤바뀐 부부가 존재했고, 덕분에 서양미술사에 특별한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남성 텃세의 높은 장벽을 창조적으로 극복한 여성들도 인상적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렘브란트보다 비싸게 팔렸다는 종이 오리기 작가 요아나 쿠르턴, 직물디자인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안나 마리아 가스웨이트, 마리 앙트와네트의 재단사로 세계 최초의 패션디자이너가 된 가난한 시골 소녀 로즈 베르탱,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정신적 지주가 된 카린 라르손, 캔버스 대신 거대한 정원에 예술적 재능을 펼친 거트루드 지킬 등은 모두 벽을 넘으려 애쓰지 않고 없던 길을 터 첫발을 내디딘 여성들이다. 벽에 부딪혀 앞이 깜깜하다면, 강하게 버티기보다 유연하게 돌아갈 때 빛을 볼 수도 있겠다는 통찰을 준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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