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③

중앙일보

입력

"따르릉, 따르릉"
시계는 밤 10시를 알리고 있었다. 그 날은 주말이라 일찍 잠자리에 든 상태이었다. 수녀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염 선생님, 밤늦게 미안해요. 자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 "
"예, 수녀님이군요. 무슨 일이에요."
"환자가 있는데 복수가 너무 많이 차 다급한 것 같아요. 지금 혹시 괜찮다면 같이 방문해 주지 않을래요?"

사람이란 거절할 줄도 알아야한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거절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하였다. 수녀님과 함께 환자 집을 방문한 시간은 11시가 약간 넘었다. 30대 후반의 여자 환자로 얼굴은 앙상한 뼈만 남아 있고, 배는 남산만하였으며, 복수로 인해 숨이 너무 찬 상태이었다.

환자에게 가장 급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복수를 빼는 것이었다. 너무 급히 방문하는 바람에 복수를 뽑는데 중요한 angio-needle(일종의 바늘)을 가지고 가지 못하였다. 난감한 순간이었다.

약국은 이미 문을 대부분 닫았고, 열린 약국이라도 대형 약국이 아닌 이상 그 바늘이 있을리 만무한 일이다. 우리는 거리를 두리번거리다가 병원 응급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응급실로 가서 간호사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바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환자 집으로 가서 복수천자를 실시하였다.

환자의 배에서 복수가 차츰 빠지면서 환자는 호흡이 편안해지고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다. 복수가 다 빠지는데는 보통 2-3시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다 빠질 때가지 우리는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나는 너무 졸려 옆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나중에는 바닥에 누워 잤다. 새벽 3시쯤 되니 수녀님께서 깨웠다.

자는 동안에 코를 굉장히 골았는지 수녀님이 무안을 주었다. 그러나 환자는 굉장히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나를 두둔해서 오히려 미안한 마음까지 갖는다.

환자의 배에서 꼽아 놓은 바늘을 빼고 소독을 한 후 우리는 가방을 챙기고 환자의 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녀님은 계속 코 고는 것 때문에 나를 놀렸다.

2주가 지난 후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우연히 수녀님을 만났다. 그리고 수녀님에게 환자의 임종 소식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복수를 뽑아주고 그 후 2주 동안은 복수 때문에 특별히 고생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사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환자가 보여주었던 미소를 떠올리면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어려운 순간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