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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불행하게 살까봐" 6살 딸 살해한 친엄마의 착각

중앙일보

입력

아동학대 이미지. 중앙포토

아동학대 이미지. 중앙포토

“아동은 적절한 법적 보호를 포함해 특별한 보호와 관리를 받아야 하고, 인류에게는 아동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2020년 서울고등법원의 한 법정에 1959년 UN이 선포한 아동권리선언이 울려 퍼졌다. 61년 전 만들어진 아동권리선언이 왜 오늘날 우리 법정에까지 소개되게 된 걸까.

“숨바꼭질하자” 유인해 목 조른 엄마

2017년 말 A씨(43)씨는 남편이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일을 그만두게 되자 연고가 전혀 없는 도시로 주거를 옮기게 된다. 수입이 줄어들고 가족 간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던 A씨는 키우던 친딸도 “나처럼 불행한 삶을 살 것 같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가족들이 집을 비우자 A씨는 혼자만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고 만다.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는 척 안방으로 유인한 다음 보자기 두 개로 아이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A씨는 범행 3시간 뒤 근처 지구대를 찾아 자수했다. 그날은 아이의 6번째 생일 다음 날이었다.

심신미약 주장… 1·2심 징역 25년

숨진 아이에 대한 기억은 엄마가 아닌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항소심에 따르면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를 “평소 활발하고 밝게 유치원 생활을 한 아이”로 기억했다. 아빠와 엄마, 고모, 10대인 언니와 함께 살았고 아빠 수입이 있어 보살핌을 전혀 못 받는 처지도 아니었다고 한다. 항소심인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는 “아이는 무방비 상태에서, 엄마로부터 무슨 까닭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공포,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숨을 거뒀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심부터 인정된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심신미약’이라는 A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A씨는 사건 수일 전부터 휴대전화로 “딸아이 죽여야 하는데” “자폐아들 살해 집행유예 어떻게 가능했나”“아동학대” 등을 검색했다. 자신의 범행이 들킬까 봐 CCTV에 관한 사항을 검색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긴급 체포 당시 유치장 동료에게는 “심신미약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고 당시 유치장 수감인이 수사기관에 진술도 했다. 감정을 맡은 의사도 심신미약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1심은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A씨가 구속됐을 당시 A씨가 “딸의 유전병을 끊어주려 죽였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1ㆍ2심 공판 과정 물론 판결문에도 아이에게 유전병이 있었다는 언급은 없었다. 실제 아이가 유전병을 진단받은 이력도 없다고 한다. 재판부는 “A씨는 ‘아이가 이기적인 성격이라 자신처럼 계속 고통을 받을 것 같아 살해했다’고 진술했지만, 이는 자신의 어린 딸을 살해할 동기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아이가 죽게 된 건 A씨의 ‘딸에 대한 근거 없는 증오’ 같은 개인적인 이유밖에 찾을 수 없다는 취지다. A씨는 아이 아빠와 동생을 잃은 큰딸로부터용서받지도 못했다. 항소심은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제 이 아동은 세상에 없다”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현황 및 재신고 건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현황 및 재신고 건수.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근 한 아이가 폭력을 피해 맨발로 지붕을 건넜고 또 다른 아이는 여행용 가방에 갇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A씨 딸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동권리선언을 법정에서 읊은 재판부는 “이 아이는 특별한 보호를 받지도 못했고 사랑이 넘치는 환경에서 성장할 기회도 허락받지 못했으며, 자신의 재능을 자기의 동료를 돕는데 쏟을 기회도 모두 잃어버렸다”고 판결문에 썼다.

전문가들은 끊이지 않는 아동 학대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가 “아이의 목숨을 앗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동 권리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김예원 변호사는 “우리나라도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꽤 오래됐고 학대받지 않을 권리를 구체화한 게 특별법”이라고 말했다. ‘아동 권리’라는 말이 아예 생소한 수준의 나라는 아니라는 취지다. 그럼에도 A씨같은 사례를 막지 못하는 일이 “더 늦어져서 안 된다”는 점에는 다수의 법률가가 공감을 표했다. 항소심은 항소를 기각하며 “이제 이 아동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판결문 한 구절로 남겼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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